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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영【經營】

한국 전통주 육성, 농촌을 동시에 살리는 일

by 禱憲 2007.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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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주 육성, 농촌을 동시에 살리는 일, 정부가 나서야

<농촌경제연구원 이동필 선임연구위원>



지난 10~11일 서울 남산골의 한옥마을에서는 '2007년 한국전통주와 전통음식의 만남'이란 축제가 열렸다. 헝가리대사 등 15개국 외교사절들이 초대되는가 하면 전국에서 소식을 듣고 모여든 애주가들이 줄을 선 가운데 모두 250여 종에 이르는 가양주와 농민주, 민속주가 전통음식과 함께 전시되어 보는 이마다 찬사를 금치 못했다.


마실 수는 있되 살 수는 없는 술들


물론 원하는 대로 맛도 볼 수 있었다. 벌컥벌컥 마시고 취할 정도로 술을 내주지는 않았지만 본인만 원한다면 수십 종의 진귀한 술을 홀짝홀짝 맛볼 수 있는 전례 없는 자리였다. 다만 판매는 하지 않았다. 그 대부분은 주세법에 따라 판매를 허가받지 않은 술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술이라고 해 봤자 소주와 맥주, 와인, 그리고 어쩌다 맛 볼 수 있던 외국산 양주가 전부인 줄 알던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술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그 며칠 전 일본 지바(千葉) 현의 마쿠하리(幕張)에서 열린 프리마켓 축제에도 한국 전통주가 50여 종 출품되었는데 1만여 명의 일본 손님들이 포도막걸리며 검은콩막걸리, 복분자주, 석류주, 송이주 등 우리 술을 맛보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하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농업인들이 생산한 원료를 이용해 손쉽게 술을 만들도록 한 농민주 제도를 도입한 지 10년 남짓, 이제야 서서히 제도개선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2007년 한국전통주와 전통음식의 만남' 축제에 출품된 각종 가양주들.

각종 가양주를 관람하는 것은 물론 시음도 가능해 큰 찬사를 받았다 ⓒ프레시안


그 많던 우리 술, 다 어디로 갔나


사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행세께나 하는 집안에는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을 위해 전해 오는 가양주가 있었으며, 농사꾼들마저 집에서 빚은 농주로 농사일의 힘든 시름을 잠시나마 잊어 왔던 것이다.


이는 1827년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역임한 서유구(1764-1845)가 '임원경제지(林園經濟誌)'에 무려 171종의 술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든지, 일제가 자가양조를 금지하기 한 해 전인 1916년 당시 전국의 소주업체가 무려 2만8404개나 되었다는 점에서도 술은 대가집 뿐만 아니라 여염집이나 농가에서도 누구나 쉽게 빚어 마시던 음식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로부터 1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 우리 전통술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국세청 발표에 의하면 2006년 우리 국민은 평균적으로 소주 72병과 맥주 80병을 마셨지만 알고 보면 이들 주류는 대부분 수입원료에 의존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 전통술인 약주는 소비가 줄어드는데 수입와인의 소비는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맑은 물과 철마다 나는 온갖 농산물로 자유스럽게 빚어 마시던 술이건만 주세령을 제정하고 정부가 이를 관리한 지 100년 만에 그 많던 우리술은 간 곳 없고 외국 원료를 이용한 저급 대중주가 아니면 아예 수입 와인과 양주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가 이렇게 침체된 원인은 술의 종류를 단순화하고 제조방법을 획일화하여 지나치게 규제를 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즉 1907년 일제가 '주세령'을 발표하면서 주세의 징수편의를 위해 주류의 종류를 탁주와 소주, 약주로 단순화하고 허가를 받지 않은 가양주의 제조를 금지했던 것이다. 일제 때는 주세가 전체 세금의 30%를 차지했다고 하니 당시 밀주단속이 얼마나 심했을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뒤 해방과 6.25동란을 겪으면서 식량부족이 극심해지자 1965년부터는 술을 빚는 데에 곡물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양곡관리법'이 발동되면서 길흉사나 제사에 쓰려고 집에서 빚던 술까지 밀주로 간주해 단속했으니 오죽하면 밀주단속원을 경찰보다 더 무서운 저승사자라고 했겠는가. 집에서 술을 담근다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금기사항이 되면서 집집마다, 고을마다 면면히 전해 오던 전통술은 대부분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나마 어쩌다 살아남은 양평의 '호랭이술'이나 아산의 '집동가리술'과 같은 이름에는 엄한 단속을 피해 숨어서 겨우겨우 연명해 온 우리술의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갈 길 멀고 험난한 전통 우리술


그러던 전통술에 숨통이 트인 것은 좋든 싫든 88올림픽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세계인의 축제라는 올림픽을 얼마 앞둔 1986년 당시 문화공보부가 18종의 주류제조 기능보유자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또한 교통부의 추천에 따라 관광토속주를 개발하면서 문배주며 이강주, 안동소주 등을 재현해 아쉬운 대로 '우리 문화'의 일환으로 체면치레 했던 것이다. 그 뒤 1993년 WTO체제가 출범하자 국산농산물의 소비방안을 고민하던 농업인들의 요구를 반영해 자기가 생산한 농산물을 원료로 술을 제조할 경우 농림부장관의 추천에 따라 비교적 쉽게 주류제조허가를 내주는 농민주 제도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아직 전통우리술이 가야 할 갈은 멀고도 험난하다. 2005년 현재 전체 주류업체 1422개 중 민속주(48개)와 농민주(184개)를 합한 우리술의 가짓수는 전체의 16.3%를 차지하지만 이들이 생산한 출고량과 납세액은 각기 0.32%와 0.71%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영세하다는 뜻인데 국세청에 따르면 매출실적이 없는 업체가 무려 80여개나 될 뿐만 아니라 연간 매출액이 10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업체가 민속주의 33%(10개) 및 농민주의 29.3%(29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농민주와 민속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주류 출고량의 0.3%, 납세액의 0.7%에 불과한 실정이니 아직 별도의 산업영역이라고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미미한 규모다.


우리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고 부가가치를 증대하며, 농어촌관광을 촉진하는 컨텐츠이자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서 민속주와 농민주가 중요하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특히 FTA시대에 우리 농촌과 농산물의 활로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더욱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그런 활로가 마련되고 있는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우리술업체들은 높은 세금과 지나친 제조 및 유통규제로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효주에는 30%, 증류주에는 72%의 주세를 부과하지만 여기에 교육세와 부가가치세를 합하면 각기 43~46% 및 113%의 세금을 납부해야 하니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클 수밖에, 더구나 연간 생산량 10kL 미만의 영세한 업체가 64%를 넘는 마당에 이들에게도 대기업과 같은 수준의 세금을 납부해야 하니 어찌 감히 시장경쟁에 명함이라도 내 볼 수 있겠는가?


또한 이들 업체의 대부분이 영세규모로 독자적인 연구개발이나 홍보나 판촉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에 신제품개발이나 품질향상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게다가 전자상거래를 금지하고 우편판매를 제한하는가 하면, 농촌체험관광마을에 어쩌다 들르는 손님에게 한두 병 파는 술조차 엄격한 시설기준을 갖춰 제조와 판매허가를 받아야 하는 실정이니 도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팔 수 있겠는가?


'우리술 육성'은 농업과 농촌을 동시에 살리는 길


한정된 농지와 낮은 농업생산성으로 늘 식량문제에 전전긍긍하던 조선시대에도 양곡을 소비하는 술의 제조를 억제해 왔다. 특히 가뭄이나 흉년, 그밖에 나라에 길흉사가 있을 때는 금주령을 내려 술을 단속했는데 그 때도 "늙고 병들어 약으로 복용하거나 혼인, 제사, 부모의 헌수 및 서민 다섯 사람 이하가 술을 마시는 것과 길가에서 병술을 파는 것은 예외로 허용했다고 한다(조선실록 성종 9년 5월29일). 당시 중국에는 주세를 부과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어찌 임금이 술장사를 하겠느냐?"며 세금을 걷지 않았다고 하니 아마도 그 덕분에 조선시대에는 여러 가지 술이 가양주 형태로 발전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어느 날 갑작스레 만들어진 뿌리 없는 졸부가 아니라 오천년 문화민족으로서 오래 숙성된 맛과 향이 살아 있는 전통우리술을 재현하고, 개방화로 시름에 잠긴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길이 있다면 이들 민속주나 농민주에 대해 몇 푼의 주세를 감면해주거나 제도정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정부의 정책과 관계없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물론 그동안도 민속주와 농민주의 제조 및 판매규제를 완화하였는가 하면 200kL 미만의 과실주에 대해서는 주세를 50% 감면하는 등 배려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최근 열린 행사에서처럼 외국대사를 초청해 한국전통주와 음식을 소개하는 것도 우리술의 홍보와 판촉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어디서,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는 술을 하루 이틀 전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얼마나 이들 업체의 매출증대와 경영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그 보다는 다양한 주류의 생산을 저해하는 제조방법과 시설기준을 과감하게 정비하고, 소규모 민속주와 농민주의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차등과세와 전자상거래 허용 등 유통규제 완화는 물론 이들 산업에 대한 종합적 지원과 체계적 관리를 위해 <민속주 및 농민주산업육성법>을 제정하는 등 이제는 정부가 결단을 내릴 때이다.


세계화나 도시화가 진전될수록 더욱 그립고 아쉬운 것이 강나루 건너 밀밭 길과 술 익는 마을, 그리고 가까운 친구를 청해 정성스레 빚은 가양주를 나누어 마시는 그 여유와 나눔의 문화가 아닐까? 혹시 음주문화상으로 물의를 일으킨 어느 군수처럼 '술 권하는 정부'로 인식될까봐 걱정스럽다면 염려를 붙들어 매기 바란다. 거기에 농업과 농촌이 사는 길이 있고, 우리 문화의 맛과 향, 멋을 기르는 활로가 마련되어 있다면 그런 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바로 영광의 길이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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