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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출발한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 요구 시위대가 서울 시청 앞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현수막을 들고 맨 앞에서 행진하는 청소년들. |
ⓒ 안홍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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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4시가 넘어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행진을 시작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차도 위에 선 수많은 시민들은 그들이 지금 왜 이곳에 섰으며 그리고 그들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가야 할 곳은 바로 시청 앞 광장이었다. 이미 그곳은 수많은 시민들이 집회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거의 국민가요 수준이 되어버린 '헌번 제1조'를 힘차게 부르며 행진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얼마나 걸었을까, 핸드폰이 울렸다.
"형님 어딥니꺼?"
"인성이냐, 마로니에 공원, 지금 시청으로 행진 시작했어."
"그럼 지는 지하철 타고 가는 중인데예 시청서 기다리겠심더."
"알았어. 거기서 보자."
안동에 있는 인성이였다. 그는 얼마 전까지 나와 함께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동생이다. 공부를 마저 끝내려 잠시 안동에 있는 학교로 돌아갔다. 내년에 다시 귀환(?)할 예정인 그가 지금 없는 돈에 차비까지 빌려서 이곳으로 오고 있다.
대학로의 시위대는 방송 차에 올라탄 사회자의 목소리를 따라 발언도 하고 노래도 하고 구호도 외쳤다. 파주에서 올라왔다는 한 고등학생의 발언이 무척이나 당차다. 또 저 멀리 지방 어디선가 올라왔다는 남학생은 열정과 패기가 넘친다. 수천 명의 시위대를 그리고 그들의 행진을 진두지휘하는 저 고등학생의 당찬 에너지가 놀랍고 부럽다. 저 나이 때의 나는 과연 무엇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을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의 배후는 누굴까
"도대체 배후가 누구야?"
푸른 기와를 지붕 삼고 으리으리한 대리석을 기둥 삼은 저들은 수도 없이 물었다. 그리고 그들 마음대로 생각하고 결정했다. 과연 누구였을까? 우리의 배후는, 아니 나의 배후는…. 저마다 처한 입장과 상황에 따라 그 배후는 친북 좌파 세력도 되었다가, 현 집권세력도 되었다가, 초중고 여린 학생들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가 배후 세력이자 주동자가 되어 버렸다.
"이명박! 청와대에서 방빼!"
"이름은 명박, 별명은 쥐박, 투기는 대박, 개념은 외박, 경제는 쪽박, 이런 씨팍!"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우고 이명박은 초중고와 싸운다!"
시위에 참가할 때마다 보았던 기발한 표어와 톡톡 튀는 문구들이다. 회사원으로 보이는 아빠의 무등을 탄 어린 여자 아이가 들고 있는 저 '촌철살인'의 문구처럼 이명박 정부는 처음엔 초중고와 싸우더니 이제는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과 싸운다. 보수 신문과 거대 여당이 되어 버린 한나라당을 제외하면. 그리고 저 광대한 태평양 너머 또 하나의 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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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출발한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 요구 시위대가 서울 시청 앞 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는 가운데 종묘 앞에서 한 노인이 시위대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다. |
ⓒ 안홍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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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들은 연신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계속했다. 마주 오는 버스 안의 운전기사와 승객들이 손을 흔들어 격려를 해주었다. 우리는 또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 화답을 했다. 인도 위에서 시위대와 함께 걷던 젊은 여자 둘이 귓속말로 뭔가를 주고받는가 싶더니 종종거리며 시위대의 대열로 들어온다.
그들을 본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왼편에 선 여자의 하이힐이 상당히 높다. 오래 걸으려면 발이 꽤 아플텐데. 묻지도 않은 염려를 하며 뒤를 돌아본다. 광우병 쇠고기로 인해 촉발된 성난 민심의 대열은 이제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엄하고 위대하다.
"민주시민 함께 해요. 고시 철회, 협상무효. 민주시민 냉큼 오시오!"
시위대를 향한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차량의 경적 소리로 호응을 해주기 하고 어떤 할아버지는 고생한다며 편의점에서 사온 음료수를 건네기도 했다. 격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리 시위로 오랜 체증을 견디지 못한 한 운전기사가 잔뜩 인상을 쓴 채 시위대를 향해서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본 시위대의 한 명이 차를 막아섰다. 성난 운전자가 눈을 부라리며 나온다. 욕설이 오간다. 멱살을 잡는다. 드잡이가 시작된다. 감정은 점점 격해진다. 주먹다짐이 오가려는 찰나 높아지는 자정의 목소리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자정의 목소리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커다란 역할을 해주었다. 대열은 저녁 6시가 조금 넘어 시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이미 광장과 주변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달려온 전국 방방곡곡의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아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냐?"
"저녁 먹고 있는 중입니더!"
"알았어. 무대 앞쪽 왼편, 광우병 쇠고기 깃발 있는 데로 와."
그리고 잠시 뒤 집회가 시작되었다. 날이 어둑해지고 하나둘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무대에 선 사람들은 하나같이 달변이었다. 반응은 뜨거웠고 오래 지속되었다. 이따금씩 연호도 외쳤다. 저녁 8시가 넘어서 집회가 마무리 되고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토록 수많은 행렬들을 어디에서 보았던가?
여경의 확성기 소리... 그리고 찾아온 새벽
밤 10시, 11시, 12시…. 두 갈래로 나눠졌던 시위대는 자정이 다 되자 광화문 네거리에 집결 하였다. 그리고 새벽이 되자 버스 뒤에 숨어 있던 전경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위는 해산하라는 여경의 확성기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지금 시민 여러분들은 불법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평화 집회라고 하면서 시민들의 세금으로 낸 전경 버스를 부수고 전경들에게 물병을 집어 던지는 것이 평화 시위입니까? 지금 빨리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해산하지 않으면 체포하겠습니다."
자정부터 시작된 여경의 멘트는 새벽이 되어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는다. 시위대 측 사회자도 지지않고 맞불을 놓았다.
"저희는 청와대 앞까지 행진한 다음 이명박 대통령에게 우리들의 정당한 요구를 말한 다음 즉시 해산할 겁니다. 도로 위에 차를 방패처럼 막아 놓은 경찰들이 먼저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지금 즉시 차를 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방송녀는 똑같은 멘트 이제 그만하고 노래나 하세요."
우하하하~ 사람들의 웃음과 함성과 연호가 줄기차게 이어진다.
"노래해. 노래해. 노래해."
하지만 졸지에 '방송녀'라는 별명을 얻어버린 이름모를 여경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똑같은 멘트만 반복해댔다. 한동안 경찰과 대치하고 있던 시위대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사다리를 버스에 걸쳐놓고 올라가려고 했다. 버스 위의 전경들은 방패를 찍어누르며 시위대를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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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농성 나흘째인 8일 새벽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서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는 시민, 학생들이 버스로 바리케이트를 친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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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려는 자와 막는자. 치열하다. 아니 그것은 이미 문자와 언어로 가능한 표현을 넘어섰다. 전경들이 무차별 뿌려댄 소화기 가루가 온 몸을 휘감는다. 콜록콜록 기침이 요란하고 숨을 쉬기가 버겁다.
"씨발, 우리가 불이냐. 왜 우리한테 소화기를 뿌려대."
"지금 우리 촛불 들고 있잖아요."
"그…그런가?"
기침이 끊이질 않는다. '괜찮으세요?' 그때 어디선가 흰 가운을 입은 남자 하나가 다가와서 걱정스레 묻는다. 의료 봉사단이다. 괜찮다고 말하자 되도록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하며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겼다.
소화기 분사에 분노한 시위대 몇이 전경들을 향해서 물병을 던지고 불꽃을 쏴댔다. 불꽃은 전경들을 겨냥한듯 한 전경의 머리와 방패에 맞는다. 미친 광우병 소처럼 전경과 분노한 시위대의 손아귀에 들린 소화기와 불꽃놀이와 물병들이 광화문 네거리를 거의 아비규환의 수준으로 만들어 버린다.
"쏘지마! 쏘지마! 쏘지마!"
하지만 이내 다시 들려오는 자정의 목소리들. 그 자정의 목소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치는 게 아니라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시위대와 전경 어느 누구도 쉽게 거부할 수 없는 권능이 되어 이성을 잃어버린 몇몇의 과격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드세요, 물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김밥 필요하신 분 가져가세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자원봉사자들 수십 명이 마스크를 쓴 채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물과 커피와 먹거리를 나눠주었다. 80년 5월 광주와 87년 6월 항쟁의 주역들이 그 시절에 그랬듯이 이제는 그 주역들의 아들과 딸들이 2008년 또 다른 6월 항쟁의 거점이 된 광화문 네거리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고 있을지도 모를 암울한 시대적 오류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졸음을 달아나게 한 목소리
어느덧 8일, 새벽 5시가 넘었다. 졸음과 피곤에 지친나머지 보도블록 위에 철퍼덕 주저 앉은 채 눈을 감고 있는데 옆에 앉은 사내의 전화 소리가 귓전을 파고든다.
"여보 나야! 응 밤새 시위 하다가 한 잔 했어."
그의 말처럼 목소리엔 취기가 가득하다.
"오늘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72시간 릴레이 집회 마지막 날이라 함께 고생하는 사람들을 놔두고 중간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 부당함에 맞서고 싶었어. 내 맘 알지. 그리고… 사랑해!"
순식간에 졸음이 달아나 버렸다. 거리를 두고서 다시 정비를 한 전경들은 점점 우리와의 보폭을 줄이며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후퇴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일사분란하게 훈련된 그들의 조직과 빈틈이 없는 거센 반격에 우리는 점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따다다닥. 아스팔트 위를 요란하게 두드리는 방패 소리, 그리고 그들이 입에서 뿜어낸 거대한 함성 소리와 더불어 우레처럼 들려오는 군홧발 소리들. 순간 공포감이 몰려들었다. 사력을 다해 달렸지만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둔부에 닿는 둔탁한 느낌. 그리고 지독한 통증. 그래도 달리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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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개방 반대 72시간 릴레이 농성 나흘째인 8일 새벽 서울 세종로네거리에서 밤을 새워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진압에 나선 경찰이 한 시민의 목을 낚아채서 땅바닥에 쓰러뜨리고 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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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어디 계셨었어요?"
"응…끙~~"
일요일(8일) 아침 지하철 2호선은 무척이나 한산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경 하나가 던진 방패에 얻어맞은 둔부를 어루만지며 어제와 새벽의 일들이 아득한 꿈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일들이 단지 꿈이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다시 안동으로 간다는 동생을 먼저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길. 자꾸 졸음이 몰려온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자면 안 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