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용법
■ ‘감사하다’와 ‘고맙다’의 차이
물음 : 요즘에 ‘감사하다’란 말이 이 땅에서 너무도 활개를 치고 우리나라 말의 ‘고맙다’, ‘고마워하다’를 마구 짓밟고 있습니다. 우리말 사랑, 나라 사랑의 뜻에서 ‘감사하다’라는 말은 ‘고맙다’, ‘고마워하다’라는 우리의 정다운 토박이말로 쓰도록 제안하는 바입니다. |
답 : 근래에 ‘감사하다’가 큰 세력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대부분의 경우 그것을 ‘고맙다’로 바꾸어 쓸 수 있고, 또 바꾸어 쓰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감사하다’를 이 땅에서 몰아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 용도를 구분하자면 ‘감사하다’는 좀더 격식을 차리는 말투에 많이 쓰이고, ‘고맙다’는 친근한 비격식체 관계나 좀더 부드러운 말투에 더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어떻든 두 단어는 어떤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 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감사하다’를 기계적으로 무조건 ‘고맙다’로 대체하는 일은 우리의 언어생활을 어떤 틀에 맞추어 너무 경직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생활에도 다양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같은 뜻이라면 가능한 한 우리 고유어를 지키고자 하는 정신은 매우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람’이나 ‘즈믄’이 한자어 ‘강(江)’이나 ‘천(千)’에 밀려 그 자리를 내어 주듯, 쓰이지 않는 말은 결국 설 땅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고맙다’, ‘고마워하다’와 같은 우리말 표현을 더욱 열심히 쓰려는 자세는 바람직한 일일 것입니다.
■ ‘갑절’과 ‘곱절’의 차이
물음 : ‘갑절’과 ‘곱절’이란 말의 차이점을 알고 싶고 ‘두 갑절’이란 말이 가능한지도 알고 싶습니다. |
답 : ‘갑절’은 어떤 수량을 두 번 합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곱절’은 같은
수량을 몇 번이고 합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갑절’은 2배라는 뜻만을 가지고 있지만 ‘곱절’은 ‘세 곱절, 네 곱절’ 등과 같이 배수(倍數)를 세는 단위로 사용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두 갑절’이라는 표현은 2배의 뜻을 이미 가지고 있는 ‘갑절’이라는 말에 다시 수량을 나타내는 ‘두’라는 불필요한 관형사를 덧붙인 것이기 때문에 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 ‘교포’와 ‘동포’의 차이
물음 : 흔히 구분 없이 혼용되어 쓰이는 두 단어인 ‘교포’와 ‘동포’의 차이는 무엇인지요? |
답 : 우선 국어사전의 뜻풀이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포(同胞) : 1. 형제, 자매, 동기(同氣). 2. 같은 겨레/재외 동포, 사해동포.
교포(僑胞) :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자국민/재일교포, 교포 사회.
이 풀이를 보면 ‘동포’는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들’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쓰이고, ‘교포’는 거주지를 기준으로 한 보다 좁은 의미의 법률적인 개념으로 쓰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확장적인 술어임에 비해서 후자는 축소 제안적인 술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여 각각의 상황에 따라서 각기 적당한 단어를 선택하여 용어의 정확성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 ‘님비’와 ‘핌피’의 뜻
물음 :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 ‘님비’ 혹은 ‘핌피’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요? |
답 : 이들 단어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단어들로서, 영어 표현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약어입니다. ‘님비(nimby)’는 ‘not in my backyard’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이며, ‘핌피(pimfy)’는 ‘please in my front yard’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입니다. 이 단어는 요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환경 문제와 지역 자치 정부간의 관계에서 그 뜻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님비’라는 말은 쓰레기 매립장이나 소각장, 핵폐기물 처리장 등 이른바 혐오 시설들을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는 지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며, ‘핌피’는 대규모 첨단 산업 시설, 관공서, 문화 시설 등 이른바 선호 시설을 지방 자치 단체 등이 자기 지역에 유치하려고 요청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언뜻 보기엔 상반된 뜻을 나타내는 것 같으나, 지역 이기주의 혹은 집단 이기주의라는 같은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신조어들은 새로운 시대의 한 흐름을 간명하게 드러내는 특징을 갖고 있으나,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고 영어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국적 없는 낯선 말들인 만큼 되도록이면 사용을 피하고 우리말로 바꾸어서 그 의미를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대’와 ‘-데’의 차이
물음 : ‘병식이가 집에 ○○’라고 할 때 ‘간데’라고 해야 하는지, ‘간대’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덧붙여 ‘-데’와 ‘-대’의 차이점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
답 : ‘-데’와 ‘-대’는 잘 구별하여 써야 할 종결어미들입니다. ‘-데’는 ‘하게’ 할 자리에 쓰이어 경험한 지난 일을 돌이켜 말할 때 쓰는, 곧 회상을 나타내는 종결어미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데’에서 ‘더’라는 형태소가 분석되는데 이 형태소는 예부터 회상을 나타내는 문법 요소(선어말어미)였고, 그 기능이 그대로 ‘-데’에 반영된 것입니다. ‘-데’가 회상을 나타낸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예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 가. 그가 그런 말을 하데.
나. 경치가 과연 좋데.
다. 신부가 예쁘데?
(1 가)는 “그가 그런 말을 하더라. 라는 의미이고, (1 나)는 “경치가 과연 좋더라. 라는 의미로 각각 화자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사실을 회상하여 청자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1 다)에서처럼 ‘-데’는 의문문에 쓰이기도 합니다. “신부가 예쁘데?” 하면 결혼식에 가서 신부를 직접 본 사람에게 신부가 예쁘더냐고 물어 보는 말이 됩니다. 경어법 등급상의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면 ‘-던가’와 같은 뜻입니다. 다만, ‘-던가’는 표준어인데 반해 ‘-데’도 표준어로 인정할 것인지는 아직 남아 있는 문제입니다. 참고로, “오늘 날씨 참 시원한데”, “두 사람이 아주 잘 어울리는데”, “기분 좋은데” 등에서 보듯 ‘-ㄴ데, -는데, -은데, -던데’ 등의 종결어미들도 있습니다. 이 어미들에도 ‘데’가 보이긴 하지만 스스로 감탄하는 뜻을 나타내며 보통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어떠한지 묻는 의도를 내포하기도 하는 것으로 ‘-데’와는 뜻이 다릅니다.
한편, ‘-대’는 ‘다(고) 해’의 준말입니다. ‘다(고)’에서 ‘고’가 탈락하고 남은 ‘다’에 ‘해’에서 ‘ㅎ ’이 탈락한 ‘ㅐ’가 합쳐진 말입니다. 다음의 예들에서 보듯이 ‘-대’는 형용사 및 동사의 어간 다음과 동사 및 지정사의 시제형태소 ‘ㄴ, 는, 었, 겠’ 등에 연결되어 ‘-대, -ㄴ대, -는대, -었대, -겠대’ 등의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2) 가. 그 여자 예쁘대(예쁘다고 해).
나. 그 사람 오늘 떠난대(떠난다고 해).
다. 그 여자는 책만 읽는대(읽는다고 해).
라. 그 사람은 학생이 아니었대(아니었다고 해).
마. 집에 있겠대(있겠다고 해).
바. 범인을 보았대(보았다고 해).
위 예들은 모두 괄호 속에 보이듯 ‘○○대’가 ‘○○다고 해’의 뜻을 갖는 것들입니다. 곧 ‘-대’는 화자가 문장 속의 주어를 포함한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청자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너 오래” 등과 같이 명령형이나 계사 뒤에서 쓰이는 ‘-래’는 ‘-라고 해’에서 줄어진 말로 ‘-대’와 같은 뜻을 가진 또 다른 형태소입니다.
‘-데’와 ‘-대’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은 예로 요약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3) 가. 그 영화 참 재미있데.
나. 그 영화 참 재미있대.
(3 가)는 화자가 직접 그 영화를 보고 “그 영화 참 재미있더라. 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고, (3 나)는 화자가 그 영화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대로 “그 영화 참 재미있다고 하더라. 라는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은 “병식이가 집에 간다고 해”의 의미이므로 ‘-대’를 써서 ‘간대’라고 해야 합니다.
■ ‘도로’의 뜻과 쓰임
물음 : 지방에 사유지가 있는데 언제든지 씨만 뿌리면 농작물 재배가 가능한 자연 상태로 있습니다. 그런데 인근 주민들이 그 위로 지나다녀 저절로 길이 생겼습니다. 이를 ‘도로’라고 할 수 있는지요? |
답 : 현재 대표적인 국어사전들의 ‘도로’에 대한 뜻풀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국어대사전(민중서림)
도로 : 사람이나 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길
(나) 국어대사전(금성출판사)
도로 : 사람․차 등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넓은 길
(다)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
도로 : =길
길 : 다른 곳으로 다닐 수 있게 나 있는 곳(공간)
위 세 사전의 뜻풀이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와 (나) 사전은 ‘도로’는 ‘길’의 하위 개념이며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 사전은 ‘길’과 같은 뜻으로 보며 따라서 저절로 생긴 것까지 포함합니다.
그런데 (다) 사전의 뜻풀이는 다소 무리한 느낌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배나 비행기가 다니는 곳은 ‘길’이라고 해도 ‘도로’라고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길’과 대비하여 ‘도로’의 뜻을 풀이한 ‘뉘앙스 풀이를 겸한 우리말 사전’(임홍빈 편저, 아카데미하우스)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로 : 육지에 난 길만 가리키며, 그것도 어느 정도 닦은 길을 가리킨다. 사람이 자주 다녀 작게 난 길은 ‘도로’라고 하지 않는다.
(가) 및 (나) 사전과 ‘뉘앙스’ 사전의 풀이에 의존하면 도로는 대체로 ‘사람이나 차들이 다닐 수 있게 육지에 인위적으로 만든, 어느 정도 폭을 갖춘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포장 여부는 관계없습니다. 문제의 길은 자연 상태의 땅에서 사람들이 자주 다니다 보니 저절로 생긴 것입니다. 따라서 질의 내용으로만 볼 때 ‘도로’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상은 일반 용어로서의 ‘도로’에 대한 뜻풀이입니다. 위 사전들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일상적으로 쓰는 ‘도로’의 뜻은 명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약간씩 다르게 이해하고 쓰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점은 일상생활에서는 크게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법률 등에서는 그와 같이 막연하게 사용할 수 없으며 명확한 규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경합(競合)’은 일상적인 용법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것을 두루 가리키지만 법률 용어로서는 매우 제한되고 엄격한 의미를 갖습니다. 따라서 만일 질의하신 내용에 법적인 문제가 관련되어 있다면 관련 법규에서의 ‘도로’의 의미와 해석에 따라야 합니다. 다만 법률에 ‘도로’의 의미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면 앞에서 말씀드린 일반 용어로서의 뜻풀이가 참조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돋구다’와 ‘돋우다’의 차이
물음 : ‘돋구다’와 ‘돋우다’의 용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
답 : 실제 생활에서 ‘돋구다’와 ‘돋우다’가 구별되어 쓰이는 경우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한글 맞춤법 제22항에는 ‘-구-’, ‘-우-’가 붙은 말들 가운데 ‘돋구다, 돋우다’를 모두 예시하면서 해설 부분에서 이에 대한 용법의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안경의 도수 따위를 높게 하다’란 뜻으로는 ‘돋구다’를 사용하지만 ‘높아지게 하다’라든가 ‘끌어올리다’라는 뜻으로는 ‘돋우다’를 사용하는 것이 통례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안경의 도수를 돋구다’라는 표현 이외에 ‘등잔불의 심지를 돋우다, 용기를 돋우다, 화를 돋우다, 목청을 돋우다’ 등은 모두 ‘돋우다’를 써야 하는 예들이라고 하겠습니다.
■ ‘말씀’과 ‘말’의 차이
물음 : ‘말씀’은 ‘말(言)’의 높임말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제 말씀은……”처럼 자신의 말을 ‘말씀’으로 높여 말하는 경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닌지요? |
답 : ‘말씀’의 경우는 대개 ‘말’의 높임말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낮춤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웃어른 앞에서 자신의 말을 가리킬 때는 ‘말씀’이라고 해야 합니다. 즉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겠습니다. “성현의 말씀에 따르면……”과 같은 문장에 쓰인 높임말로서의 ‘말씀’과 달리, 여러 사람 앞에서나 어른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기 위해서도 ‘말씀’이라는 말을 써야 합니다. 따라서 질의하신 ‘제 말씀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와 같은 표현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 ‘무덤’과 ‘묘지’의 차이
물음 : 저는 미술 계통의 잡지를 만드는 출판사의 편집 담당자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미켈란젤로의 벽화를 다룬 글을 쓰다가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즉 미켈란젤로의 벽화가 무덤에 그려진 것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묘지에 그려진 것이라고 해야 하는지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이 맞는 표현인지요, 아니면 둘 중에서 어느 쪽을 써도 무방한 것인지요? |
답 : 이 문제는 결국은 우리말 어휘에서 고유어 ‘무덤’과 한자어 ‘묘지’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는 문제로 귀착됩니다. 두 어휘 사이에는 물론 차이가 있습니다. 고유어 ‘무덤’에 대하여 국어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습니다.
무덤 : 시체, 유골을 땅에 묻고 일정한 표시를 한 곳. 흔히 겉에 흙을 두두룩하게 모아 놓음.
이런 사전상의 풀이를 고려해 볼 때 이 말에 대응하는 한자어는 ‘묘지(墓地)’가 아니라 ‘묘(墓)’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묘지는 무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벽화가 그려진 곳을 정확히 파악하여 알맞은 어휘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 ‘문화’와 ‘문명’의 차이
물음 : ‘문화’와 ‘문명’의 의미가 어떻게 다른지 알려 주십시오. |
답 : ‘문화’와 ‘문명’은 둘 다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물질적․정신적으로 진보한 상태를 뜻합니다. 이 두 단어를 사람에 따라서 같은 개념으로 쓰기도 하고 구별하여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문화’는 종교․학문․예술․도덕 등 정신적인 움직임을 가리키고, ‘문명’은 보다 더 실용적인 생산․공업․기술 등 물질적인 방면의 움직임을 가리킵니다. ‘기술 문명’, ‘토론 문화’ 등과 같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를 정신문명, ‘문명’을 물질문명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정신적․물질적 움직임이 복합적일 텐데, 어디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달리 표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문명의 발상지’, ‘황하 문명’, ‘잉카 문명’ 등은 농사, 토목 등 물질적인 움직임을 중시한 말이고, ‘한국 문화’, ‘미국 문화’ 등은 그 민족이나 국가의 도덕, 가치관, 종교 등 정신적인 움직임을 중시한 말로 생각됩니다. 요즘 흔히 ‘음주 문화’, ‘자동차 문화’ 등의 용어를 쓰는데, 이것 역시 음주와 운전에 관련된 예절, 풍속 등 정신적 측면을 고려한 말일 것입니다.
■ ‘비끼다’와 ‘비키다’의 차이
물음 :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껴갔다”라고 해야 하는지,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켜 갔다”라고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
답 : ‘비키다’는 사람이나 동물이 가는 방향에 있는 어떤 것을 피해서 지나가거나 옮겨가는 것을 뜻합니다. ‘비끼다’는 어떤 것에 대해 비스듬하게 또는 정확한 방향이 아닌 조금 옆으로 벗어난 방향으로 지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앞에 빚쟁이가 와서 비켜 갔다”, “물이 괴어 있는 곳이 있어 비켜 갔다” 등에서는 ‘빚쟁이’나 ‘물이 괴어 있는 곳’을 ‘피해 간다. 는 의미가 있으므로 ‘비켜 가다’를 쓰는 것이 옳습니다. “칼을 비껴 찼다”에서는 ‘칼을 비스듬하게 찼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고,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껴갔다”에서는 ‘태풍이 우리나라로 지나가지 않고 우리나라 옆으로 지나갔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므로 ‘비끼다’로 써야 옳습니다.
■ ‘빨간색’과 ‘빨강색’의 차이
물음 : ‘빨간색’과 ‘빨강색’ 중에서 어느 표현이 맞습니까? |
답 : 사전을 찾아보면 ‘빨간’은 ‘어떠한 명사 위에 붙어서 ‘온통’, ‘아주’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이 의미는 ‘빨간’이 의미가 변화하여 생긴 의미이며, 원래는 ‘빨갛다’의 관형형입니다. 마찬가지로 ‘빨강’은 ‘빨갛다’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사전에는 ‘빨간 빛깔이나 물감’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색’이 명사이므로 관형형인 ‘빨간’이 오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색’이 온갖 색을 포함하는 상위어이고, 그 하나의 하위어로 ‘빨강’이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색 중에서 빨간색을 특별히 말하기 위하여 ‘빨강색’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국어에서 명사는 뒤에 오는 명사를 수식하여 관형어적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용법도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더 자연스러운 말은 ‘빨간색’이라고 생각합니다.
■ ‘애도하다’의 쓰임
물음 : “그래서 그의 종들이 그를 병거에서 내려, 그의 둘째 전차에 태우고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다. 이렇게 그가 죽어 그 조상들의 묘지에 장사되었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이 요시야를 인하여 애도하였다”라는 글에서 ‘아무개를 인하여 애도하다’가 우리말 어법에 맞는지 알고 싶습니다. |
답 : ‘애도하다’는 타동사로서, ‘○○의 죽음을 애도하다’와 같은 구문으로만 사용됩니다. 따라서 예문의 ‘요시야를 인하여 애도하였다’는 올바른 우리말 표현이 아닙니다. 이는 영어의 ‘mourn for’를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데, 영어의 ‘mourn’은 자동사이므로 전치사인 ‘for’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국어의 ‘애도하다’는 ‘인하여’와 같은 말이 필요 없는 타동사입니다. 따라서 예문은 ‘온 유다와 예루살렘이 요시아의 죽음을 애도하였다’라고 하여야 맞겠습니다.
■ ‘-었-’과 ‘-었었-’의 차이
물음 : 우리말 표현에서 과거시제는 선어말어미 ‘-었-’으로만 나타내며 ‘-었었-’을 쓰면 틀린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이 맞는지요? |
답 :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말에는 영어의 과거완료와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과거의 어느 시점에 완결되어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음을 암시하는 대과거형이 ‘-었었-’으로 나타납니다. 다음의 예문을 비교해 보면 ‘-었-’과 ‘-었었-’의 차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 어제 어머니가 오셨어.
(나) 어제 어머니가 오셨었어.
‘-었-’을 쓴 (가)에 비해서 ‘-었었-’을 쓴 (나)는 그 일 이후에 어떤 일이 하나 더 있었다는 느낌을 주어, 그렇지 않은 (가)와는 구별됩니다. (가)의 문장은 단순히 어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만 기술하고 있고,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중립적이어서, 어머니가 오셨다가 지금은 가셨을 수도 있고 또 아직까지 머물러 계실 수도 있습니다. 이에 반해 (나)는 주어진 사전이 완결되어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음을, 즉 어머니가 오셨다가 다시 돌아가셨음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영어와 비교하여 우리말에 과거완료시제가 없다고 하는 것은 영어에서는 과거시제로 표현하는 일보다 먼저 일어난 사건은 모두 과거완료로 표시하도록 되어 있는데, 우리말에는 그런 의미의 과거완료 형태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외국어 문장을 번역할 때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떠났었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우리말 문장이 아닙니다. 이는 ‘그녀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또는 ‘이미 떠났다’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 됩니다. 우리말의 대과거는 과거의 상황보다 한 발 앞선 때의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긴 하지만, ‘-었었-’과 관련된 ‘-었-’의 상황이 표면에 드러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는 ‘-었었-’으로 표현된 사건 뒤에 다른 일이 일어났으리라는 것을 함축 의미로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말에 대과거 표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위의 예에서 보았듯이 ‘-었었-’이 쓰인 대과거 문장은 ‘-었-’이 쓰인 문장과 다른 뜻을 가지게 됩니다.
■ ‘-에’와 ‘-에게’의 차이
물음 : 일반적으로 ‘주다’ 등의 수여동사와 함께 쓰여, 그 간접목적어를 표시하는 조사는 ‘에게’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와 같은 예에서는 ‘에’가 ‘주다’의 간접목적어를 표시하는 조사로 쓰입니다. 이 경우 ‘에’와 ‘에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
답 : 흔히 처격을 나타내는 조사 ‘에’는 ‘주다’류의 수여동사와 함께 쓰일 때 여격의 ‘에게’와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다음의 예문들을 비교해 봅시다.
(1) 가. 화초에 물을 주어라.
나. 목마른 사람들에게 물을 주어라.
(2) 가. 그 조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였다.
나. 그 조사 결과를 장관에게 보고하였다.
(3) 가. 집에 돌을 던지지 말아라.
나. 죄 없는 사람에게 돌을 던지지 말아라.
예문에서 보면, 지적하신 바와 같이 수여동사의 간접목적어 표시 조사로 ‘에’와 ‘에게’가 모두 쓰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을 구분해 보면 ‘에’는 무정물(無情物)에 쓰이고 ‘에게’는 유정물(有情物)(주로 사람)에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에’와 ‘에게’는 수여동사와 함께 쓰일 때 같은 의미를 가지는 형태소인데, 그 환경에 따라서 상보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에게’와 거의 같은 기능을 하는 조사에 ‘한테’가 있습니다. 이들의 차이는 문체적인 것으로, ‘에게’는 문어적인 표현임에 비하여 ‘한테’는 구어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매우 한정된 환경에서 ‘더러’가 ‘한테’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더러’는 반드시 사람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서만 분포되면서, 어울리는 서술어도 ‘말하다’류의 몇몇 동사들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에게’, ‘한테’, ‘더러’는 존칭명사 뒤에서는 ‘께’로 바뀝니다.
■ ‘이러다’와 ‘이렇다’의 차이
물음 : ‘이러다’와 ‘이렇다’의 차이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답 : 두 단어가 모두 맞는 표기입니다. 다만 ‘이렇다’는 ‘이러하다’의 준말로 ‘이와 비슷하다, 이런 모양으로 되어 있다’의 뜻이며, ‘이러다’는 ‘이렇게 하다’의 뜻을 가진 말로 의미나 문법적인 기능이 ‘이렇다’와는 다릅니다. ‘이렇다’는 형용사인데 비해 ‘이러다’는 전체가 동사처럼 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다’는 ‘ㅎ’불규칙용언으로 그 활용이 매우 특이합니다. 국어에서는 자음으로 끝나는 어간에 ‘ㄴ, ㅁ’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뒤따를 때 대부분 ‘으’가 개입되는데 반해 ‘이렇다’는 ‘으’가 개입하지 않고 오히려 ‘ㅎ’이 탈락하여 ‘이러니, 이럴, 이러면, 이럽니다(이렇습니다).와 같이 활용합니다. ‘이러다’는 규칙 활동을 하여 ‘이러니, 이럴, 이러면, 이럽니다. 로 쓰입니다. 결국 ‘이렇다’와 ‘이러다’는 기본형은 다르나 활용할 때의 형태가 동일합니다. 이런 이유로 문장 안에서 위의 형태가 나왔을 때는 그 의미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국어에서는 ‘ㅎ’로 끝나는 용언 중 ‘이렇다’와 같이 ‘ㅎ’불규칙활용을 하는 것으로는 ‘노랗다, 파랗다, 발갛다, 동그랗다’ 등과 같이 ‘ㅎ’로 끝나는 형용사들이 있습니다. ‘ㅎ’로 끝나더라도 ‘낳다’와 같은 동사나 형용사 ‘좋다’ 등은 ‘ㅎ’불규칙활용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어간과 어미의 원형을 유지하여 ‘낳으니, 낳을, 낳으면, 낳습니다.처럼 써야 합니다. 다만, 동사 ‘놓다’는 일반적으로 규칙활용을 보이지만 어미 ‘-아’나 선어말어미 ‘-았’과 결합할 때는 ‘놔’, ‘놔라’, ‘놨다’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ㅎ’불규칙용언들은 어미 ‘-아/어’나 ‘-았/었’이 결합할 경우 활용 양상이 특이합니다. ‘이렇다’의 경우 ‘이렇다’에 ‘-아/어’, ‘-았/었’이 결합한 ‘*이러어’, ‘*이러었다’의 꼴로 쓰지 않고 ‘이러하다’에 ‘아/어, 았/었’이 결합한 ‘이러해, 이러했다’가 줄어든 ‘이래, 이랬다’로 써야 합니다.
■ ‘잇달다’와 ‘잇따르다’의 차이
물음 : “강력 범죄가 {잇달아, 잇따라} 발생하다”와 “{잇단, 잇따른} 강력 범죄” 중에서 어느 말이 맞습니까? |
답 : ‘잇따라’, ‘잇따른’이 맞습니다. ‘잇달다’는 ‘잇다’와 ‘달다’의 합성어로서 “이어 달다”라는 뜻의 타동사입니다. 즉 “기관차에 객차들을 잇달다”나 “장군은 훈장에 훈장을 잇단 복장으로 등장하였다”처럼 쓰입니다.
반면에 ‘잇따르다’는 역시 ‘잇’과 ‘따르다’가 합성된 단어로서 “뒤를 이어 따르다”라는 뜻의 자동사입니다. 즉 “조문객들이 잇따르다”나 “배 30여 척이 잇따라 부서졌다”처럼 쓰입니다. 물론 “청문회가 끝난 뒤에 증인들에 대한 비난이 잇따랐다”나 “잇따른 범죄 사건들 때문에 밤길을 다니기 두렵다”처럼 추상적인 사건이나 행동이 계기적으로 발생될 때에도 쓰입니다.
그런데 질문하신 예문은 자동사가 쓰일 예문이고, 질문하신 동사는 “이어 달다”라는 뜻이 아니라 “뒤를 이어 따르다”라는 뜻이므로 ‘잇따르다’를 써야 옳습니다. 정리하자면 “강력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다”와 “잇따른 강력 범죄”라고 써야 옳은 것입니다.
‘잇다’가 다른 동사와 합성어를 이룬 예에는 ‘잇달다, 잇따르다’ 외에 ‘잇닿다, 잇대다’가 있는데 이러한 합성동사의 품사를 결정짓는 것은 후행 동사들인 ‘닿다, 대다’입니다. 즉 ‘잇닿다’는 ‘닿다’가 자동사이므로 자동사이고, ‘잇대다’는 ‘대다’가 타동사이므로 타동사입니다. “산줄기가 끝없이 잇닿아 있다”나 “책상과 책상을 잇대어 놓다” 따위가 이들 동사들의 용례입니다.
끝으로 이 문제와 관련지어 한 가지 지적해 둘 것은 ‘연달아’입니다. 기존 사전들에서는 ‘연달다’를 ‘잇달다’의 동의어로 처리하고 “연달아 전화가 걸려 오다” 따위를 그 용례로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처리가 옳다면 “범죄 사건이 잇따르다”에서 ‘잇따르다’ 자리에는 ‘잇달다’가 대신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잇달다’는 “이어 달다”라는 타동사 용법 외에 “잇따르다”라는 자동사 용법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우리말큰사전, 1992>와 <금성판 국어대사전, 1997>의 처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국어대사전, 1982>와 <새우리말큰사전, 1991>에서는 위 두 사전과 달리 ‘잇달다’에 타동사 용법만 인정하고 있어 ‘잇달다’에 자동사 용법을 인정하는 문제는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는 <조선말대사전, 1992>와 같이 ‘연달아’를 부사로 처리하고(‘연달아’는 “부도 사건이 연달아 터지다”에서처럼 용언 앞에서 그 용언을 꾸미는 용법 외에는 잘 쓰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잇달다’에는 타동사 용법만 인정하여 ‘잇따르다’와 구별하는 쪽을 택하고자 합니다. 즉 ‘잇달다’와 ‘연달다’를 동의어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잇달다’와 ‘연달다’를 동의어로 처리하면 첫째, ‘잇달다’와 달리 ‘연달다’가 ‘연달아’ 꼴로만 쓰이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고 둘째, ‘잇달다’에 자동사 용법을 인정하게 되어 ‘잇달다’와 ‘잇따르다’의 동의어 관계를 인정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동일한 의미와 용법에 대해 ‘잇단/잇따른’, ‘잇달았다/잇따랐다’ 등의 복수 표기를 인정하는 것은 여러모로 불합리한 처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연달아’를 활용형이 아니라 부사로 보면 “한총련 탈퇴 여부 대학가 투표 잇따라”라는 표현에서 ‘잇따라’ 대신에 ‘연달아’가 쓰이지 못하는 현상을 잘 설명해 주는 이점도 있습니다. 이런 연유에서 우리는 ‘잇달다’에는 타동사 용법만을 인정하고 ‘잇따르다’에는 자동사 용법만을 인정하였으며 ‘연달아’는 활용형이 화석화된 부사로 처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저희’와 ‘우리’의 차이
물음 : ‘저희 나라’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어서 ‘우리나라’라고 말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답 : ‘우리’라는 대명사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화자가 청자를 포함하지 않고 자신과 그 주위의 사람을 집단적으로 가리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화자가 청자를 포함하여 함께 이르는 것입니다. 아래 예에서 (1)은 ‘우리’의 첫 번째 뜻이고 (2)는 ‘우리’의 두 번째 뜻입니다.
(1) 우리 동네에는 슈퍼마켓이 매우 많다. 너희 동네도 그러니?
(2) 우리 그만 놀고 집에 들어가자. 어머니가 걱정하시겠다.
그런데 ‘우리’는 화자가 청자를 포함하지 않고 자신과 그 주위의 사람을 집단적으로 가리키는 경우에만 ‘저희’라는 겸양어가 있습니다. 화자가 자신과 자신의 집단을 낮춰 말할 수 있으나 청자를 포함하는 집단을 낮춰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위 예문 중에서 (1)은 (1)'에 대응하나 (2)는 (2)'에 대응하지 않습니다.(* 표시는 잘못된 문장이란 뜻입니다.)
(1)' 저희 동네에는 슈퍼마켓이 매우 많습니다. 선생님 동네도 그렇습니까?
(2)' *저희도 이제 집에 들어가시지요. 어른들께서 걱정하시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우리나라’라고 말할 때의 ‘우리’가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를 살펴보면 ‘저희 나라’라는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지런하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청자를 포함하는 ‘우리’일까요? 대개의 경우는 한국인인 화자가 한국인인 청자에게 이런 말을 하므로 이때의 ‘우리’는 청자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이때의 ‘우리나라’는 ‘저희 나라’로 바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의 설명으로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가령 한국인인 화자가 미국인인 청자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그때의 ‘우리나라’는 ‘저희 나라’로 낮추어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때의 ‘우리’는 청자를 포함하지 않는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때의 ‘우리나라’도 ‘저희 나라’로 낮추어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나 ‘민족’과 같은 집단은 비록 청자가 포함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구성원이 낮추어 말하기에는 너무 클뿐더러 또한 다른 집단과 다른 어떤 절대성(그리하여 겸양을 허용치 않는)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 ‘첫째 주 월요일’의 뜻
물음 : 가령 새 달이 토요일로 시작될 때 ‘첫째 주 월요일’은 이미 지나간 것으로 보아야 합니까? |
답 : 가게나 기관 등에서 정기 휴일을 이용자에게 알릴 때 흔히 이러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한 주가 무슨 요일부터 시작되느냐, 한 달이 주중에서 시작될 때 그 주도 그 달의 한 주로 보느냐 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리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8월 1일이 토요일일 때 첫째 주 월요일은 오지도 않고 지나갔을 수도 있고, 8월 3일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이 가게나 기관이 휴일을 갖기 위하여 생긴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첫째 주 월요일이라고 했을 때는 그 달의 처음으로 시작되는 월요일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주(週)라는 말이 정확히 규정되지 않고 사용되고 있으므로, 엄밀히 따지면 어느 쪽의 해석이 맞다 그르다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고 법률 조문에서 규정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이렇게 하기로 한다고 강제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표현을 ‘매달 첫 번째 월요일’ 등으로 바꾸는 것이 애초의 전달 내용을 그대로 전하면서 혼란을 주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 ‘파출부’의 뜻
물음 : 도시에서 일손이 필요할 때에 시간제로 날품팔이하는 영세 서민 부녀자를 ‘파출부’라는 호칭으로 불러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파출부’라는 호칭은 우리나라 국어사전이나 어떠한 서적에도 그 단어의 낱말의 뜻과 용어 해석이 없습니다. ‘파출부’라는 국어 낱말의 뜻과 용어 해석을 하여 주십시오. |
답 : ‘파출부’는 현재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말입니다. 한 예로 ‘금성판 국어대사전은 ‘파출부 : 보수를 받고 출퇴근을 하며 가사 따위를 돌보아 주는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사회의 다변화와 더불어 여성이 직장에 나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가사를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됨에 따라 대신 가사를 맡아서 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예전에도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과거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이와 같이 대신 가사를 해주는 직업도 주요 직업의 하나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직업을 가리키는 이름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필요에 따라 ‘파출부’라는 직업명이 생겨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 정확한 쓰임은 사전의 뜻풀이와 같이 남의 집에 정기적으로 출근하여 대신 가사를 돌보아 주고 보수를 받는 여자를 일컫는 말로 사용하시면 되겠습니다.
■ ‘홑몸’과 ‘홀몸’의 차이
물음 :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니 우리가 흔히 ‘홀몸이 아니다’로 알고 있는 표현이 ‘홑몸이 아니다’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기를 가졌다’는 뜻으로 “홀몸이 아니다”가 맞습니까, 아니면 “홑몸이 아니다”가 맞습니까? 또 둘의 차이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
답 : 먼저 ‘아이를 가졌다’는 뜻으로는 ‘홑몸이 아니다’가 맞습니다. 사전을 보면 ‘홑몸’은 ‘⑴ 딸린 사람이 없는 몸. ⑵ 임신하지 않는 몸’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한편 ‘홀몸’은 ‘배우자나 형제가 없는 사람’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이를 보면 원래 ‘임신하고 있다’는 뜻으로 ‘홑몸이 아니다’가 옳은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비슷한 단어가 잘못 쓰이는 예는 이 외에도 아주 많습니다. 현재는 ‘홑몸이 아니다’가 옳은 표현이므로 이를 사용하셔야 합니다. 물론 ‘배우자나 형제가 없다’는 뜻으로는 ‘홀몸, 홑몸’이 다 쓰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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