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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땅【地】

‘잡초’ 미워마라, 제철 약재이거늘...〈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by 禱憲 2010.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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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미워마라, 제철 약재이거늘
달맞이꽃·환삼덩굴·쑥부쟁이…
잘 먹으면 몸 튼튼 생태계 튼튼
땅 기운 받은 효능·요리법 소개
한겨레 이유진 기자기자블로그
» 왼쪽부터 민들레, 닭의장풀, 엉겅퀴.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변현단 글·안경자 그림/들녘·1만3000원

꽃다지, 개망초, 엉겅퀴, 토끼풀, 강아지풀…. 먹을 수도 없는데 잘 번지기만 하는 풀이라고 미움받는 ‘잡초’들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들은 훌륭한 제철식재이며 약재다. 문제는 쓸모없다 여겨지는 잡초가 아니라 이 자연의 선물을 알지도 못하는 인간들이라고 지은이 변현단씨는 말한다. 본디 사람은 어린아이들 소꿉놀이하듯 길가 풀잎 따먹고, 꽃향기만 맡아도 힘이 펄펄 나는 존재 아니었을까. 이런 공상 같은 일이 사실은 인간에게 진짜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지은이는 부추긴다.

»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의 부제는 ‘약이 되는 잡초음식’이다. 잡초를 잘 먹으면 몸도 튼튼해지고 생태계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잡초를 먹는다는 획기적인 발상이 지은이에게서 처음 나온 건 아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잡초는 없다’며 모든 식물이 귀한 성분을 가진 신의 선물임을 강조했고, 지금도 시골 할머니들은 풀 가운데 못 먹을 것이 크게 없다며 살짝 맛보아 불쾌하지 않다면 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 일러준다. 수천년 이어온 채집문화를 우리 세대가 잠시 잃어버렸을 뿐이다.

 

잡초를 먹는 것은 인간이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길이며 ‘최소한의 수탈’이라 지은이는 믿는다. 농부에겐 고된 농사의 간극을 메우는 방법이며, 아픈 이에겐 건강 밥상을 회복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귀농 뒤 시흥에서 농장을 하면서 농사를 ‘실험’하는 지은이는 토종종자모임 활동을 할 정도로 우리 식물에 애정이 깊다.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잡초를 차로 끓이고, 삶아 무치고, 뿌리째 양념하고, 샐러드로 만들어 밥상에 내놓는다. 그가 끓인 된장국을 맛있게 먹던 사람들이 건더기 나물 이름을 듣더니 “잡초국이다!” 하고 놀라기도 했다나. 제비꽃, 환삼덩굴, 쑥부쟁이, 쇠비름 등 50가지의 잡초들이 저마다 독특한 맛을 품은 식량이며 그 자체로 약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지천에 널린 ‘약선’들을 홀대해 왔다는 사실에 무안해지기까지 한다.

 

지은이는 농사지을 때도 잡초를 함부로 뽑지 않는다. 그 또한 농작물만큼 귀한 생명이며 우리 삶을 떠받치는 생태계 일원임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비닐 없이 농사를 짓지 못한다는 농민들에게 그는 경작 면적을 줄이고 비닐 대신 ‘잡초 멀칭’(풀이 자라지 않게 덮는 것)을 하도록 권한다. 석유에서 나온 비닐에 숨이 막힌 땅의 본성을 회복하고 작물과 사이좋게 자라도록 최소한의 조처만 해두면 잡초는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작물 뿌리는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흙 속의 영양성분을 한층 풍부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책의 고갱이는 ‘잡초음식’의 효능과 요리법들이다. 가공식품의 발달로 “기업에 내맡겼던 생명을 되찾아오는 일”(37쪽)은 음식하는 손끝에서 시작한다고 지은이는 힘주어 말한다. 책에 수록된 요리법들은 자연의 맛, 향, 효능을 극대화하는 데 방점을 두었다. 요즘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는 질경이 씨앗은 숙변 제거에 효능 있을 뿐 아니라, 그 잎새는 삶아 된장에 무쳐 먹을 수 있다. 닭의장풀은 이파리를 데쳐 양념을 해먹거나 꽃차로도 먹는다. 엉겅퀴는 잎으로 된장국을 끓이고 줄기는 껍질을 벗겨 튀겨먹으면 맛있단다. 뱀딸기는 곤충에 물렸을 때 잎을 찧어 붙이면 좋고, 열매는 잼을 만들어 먹으면 된다. 요즘 생리통 치료제로 각광받는 달맞이꽃은 값비싼 수입 약제로 사먹기만 할 것이 아니다. 지은이는 산과 들에 나가 달맞이꽃을 따다 말려선 차로 마시고 샐러드도 해먹으라 한다.


식물 속에 스민 땅 기운을 먹고 사는 사람일진대, 화학약품 처리된 음식을 먹고 건강을 바라긴 당연히 어렵겠다. 소반 위에 올리고 보면 밥이 하늘이듯, 잡초도 하늘일 것이다. 먹을거리도 땅도 햇살도 모두 나처럼 귀한 존재이며 하늘이라 여긴다면 몸 좋아지고 마음 기뻐지지 않을 리 없을 터. 책에 실린 아름다운 야생초를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눈이 시원해지고 마음이 한결 풀린다. 잡초의 힘찬 기운이 책갈피마다 생생히 서려 있는 덕분일 것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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