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 학【美學】

할아버지 남기신 밥

by 禱憲 2007. 7. 21.
728x90

할아버지 남기신 밥




붓으로 모래 쓸은 듯

가지런히도 드셨다


비스듬히 깍아내려 남긴 밥

그릇 어디에도 밥 한 알 묻어있지 않고

다만 사선 그어 남긴 밥만 덩르렁


그리 만들려면

그저 숟가락으로만 사용할 뿐

젓가락으로는 참 힘든데...


그래서였을까

숟가락과 젓가락을 그리도 번거롭게 따로 사용하신 게


그땐 암만 먹어도 배고픈데

더 나올 것은 없고...

그래 한창 클 때였지


근데 참으로 요상한 건 그 밥은 별로

먹고 싶지가 않았었다


그렇게 정돈된 하얀 밥 선과 그 위에 눈에 띄는

고춧가루 몇 개, 김가루 몇 개


하필 그때

아나, 이거 더 먹어라

깨끗이 먹었다. 갔다 먹어라


으아 이건 아니야... 싫은데


그 말씀은 꼭 나한테만 하셨던 것 같다

거의 매번 그만큼은 남기셨고 그땐 또 이어지는 그 말씀


바로 그것

직접 말로는 하지 않아도 더 가슴 시리게 뭉클하고

마음속 저 깊이 전하는 사랑이었음을...


오래 묵혀야 참 맛이 나는 된장 같은...


오늘 식당에 김이 나왔다



(2003.02.25)

728x90

'미 학【美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드리햅번의 아름다운 말  (0) 2007.07.21
한 방 죽비소리  (0) 2007.07.21
그를 보았습니다  (0) 2007.07.21
태양광 발전 시스템  (0) 2007.07.21
재 앙  (0) 2007.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