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속전속결 아닌 원칙대로 추진해야”
노 대통령, 경제계 신년인사회 참석 [등록일 : 2008-01-04]
노무현 대통령은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 대한상의 주최로 열린 이날 신년인사회에는 경제5단체장을 비롯, 행정ㆍ입법부 주요 인사와 경제계, 학계, 주한 외국기업인, 주한 외국대사 등 1천여명이 참석했다. 노 대통령의 인사말을 정리했다.
■ 노 대통령 신년인사회 인사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전국에서 아주 중요한 분들이 많이 모이신 거 보니까 오늘 아주 좋은 날인 모양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가 송구영신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해에는 한해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 한번만 하는 자리이고 오늘은 한 해 보내고 새해 맞는 송구영신과 구정권 끝나고 새정권 들어오는 송구영신 하는 자리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송구영신 두 번 하는 날인 것 같습니다.
나가는 모습이 아름답고 화려하면 오죽 좋겠습니까만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은근히 기대는 데가 다른 분들과 비교하는 것이죠. 아직 한국에서, 나가는 모습이 화려했던 대통령이 한분도 계시지 않아서 저는 은근히 위안이 됩니다. (웃음)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글픈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손경식 회장님께서 인사말 하시면서 영신만 하면 되는데 송구에 대해 조금 언급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언급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내용을 들어보니까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시는 것 같아서 정말 더 감사합니다. (일동박수)
나가는 사람 등 뒤에 소금 뿌리는 일은 없었으면
아무래도 새정권이 들어오니 신경이 좀 쓰이지 않습니까? 특히 재계가요. 지난번에 제가 들어올 때도 신경을 좀 쓰시더라고요. (웃음) 지나고 보니까 아무 일 없었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신경 안 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말씀을 담아 인사해주셔서 떠나는 사람으로는 아주 감사합니다. 언론들이 다 아니라고 하는데 손 회장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요. (일동웃음, 박수)
나가는 길이 그렇게 화려하지 않더라도 나가는 사람 등 뒤에 구정물 뒤집어씌우거나 소금을 뿌리는 그런 일은 좀 없었으면 하는 것이 제 희망입니다. 저는 12월 19일 선거결과가 나오고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링에 올라가야 심판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링에 올라가서 공격 한번 못해보고 방어도 한번 못해보고 구경만 했는데 링에 있는 사람이 자꾸 링 바깥에 있는 사람을 패요.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받은 심판에는 당에 대한 평가도 있을 것이고 후보에 대한 평가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정부에 대한 평가는 클 것입니다. 또 세월이 지겨워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상대방이 하도 예뻐서 그런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언론은 모두 제가 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럴 때 군소리를 안해야 조금 격이 있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군소리 안하기로 작심하고 입 꽉 다물고 ‘예, 심판을 겸허히 수용합니다’ 이러고 있었는데…. 옛날 우리 식구들이 자꾸 때립니다. 가는 김에 뒤집어쓰고 가라, 이런 뜻 같기도 하고. (일동 웃음)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런 것은 좀 양해를 구하고 조용히 덮어쓰고 가라고 이야기를 해주면 덮어쓰죠.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잘못이 크니까요.
인수위는 현 정부에 도움 받을 때…‘반성문’ 요구 유감
어떻든 좀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초라한 뒷모습에다가 좀 심하다 싶은 게, 요새는 소금까지 조금 날아오는 것 같아요. 참여정부의 국장들이 인수위에 불려가서 호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지난 5년간 정책에 대해 평가서를 내라고 한다는데, 반성문 써오라는 말 아닙니까? 장관이나 차관은 또 나오지도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힘없고 새정부 눈치만 살펴야 하는 국장들 데려다 놓고 호통치고 반성문 쓰게 하는 것이 인수위인가….
옛날 보도를 한번 찾아볼 생각인데요, ‘혹시 우리도 저렇게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면 조금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그러나 자기 일은 잊어버려서 기억도 안 나고…. 지금 당장 생각은 그렇습니다.
정책의 환경과 실태를 파악하고 새 공약을 적용하려 한다면, 어떤 상황과 결과가 발생할 것인가에 대해서 시뮬레이션 해보고 거기에 필요한 정보들을 요구해야 합니다. 즉, 도움을 받는 것이죠. 질문하고 답변을 요구하고 조력을 받는 것입니다. 아직은 노무현정부입니다. 새정부의 정책을 지금부터 준비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인수위의 권한이 아닙니다. 그건 준비만 했다가 새정부 출범하면 그때 해주시면 어떨까, 그런 섭섭한 마음이 있습니다.
떠나는 사람한테 꼭 반성문까지 쓰라고, 저한테 쓰라고 하면 제가 알아서 쓸 텐데 국장들한테 쓰라고 하고 말이죠. 차라리 우리 장관들 데려다 호통을 치던지 논쟁을 하던지 그렇게 해주셔야지요.
이미 수용한 인사 자제 요청, 되풀이되는 일 없길
인수위에서 인사를 자제해달라고 해서 자제하겠다고 했습니다. 좀 있으니까 신문에 또 자제해달라고 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청와대 대변인이 ‘자제합니다. 협조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한번 말했으면 됐지 두 번씩 나가서 얘기하냐고 대변인을 나무랄까하다가 그것도 협조하라고 하니까 두 번 대답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협조하라는 말이 또 나옵니다. 설마 인수위가 그랬을까 싶기도 합니다. 신문이 자꾸 두 번 세 번 쓰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만, 또 협조를 하겠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제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정치적 고려를 가지고 정책노선을 이해하는, 소위 코드 인사라고 말해왔던 그 인사가 필요한 자리는 반드시 다음 대통령이 일하는데 지장 없도록, 새정부가 일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넘겨줄 겁니다. 벌써 그렇게 말했고요.
그러나 대통령이 중립적 입장에서 해야 하는, 정치적 인사를 해서는 안 되는 자리, 중립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자리는 법대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말씀 드렸는데 만일 한 번 더 협조하라는, 인사 자제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것은 사람 모욕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서 제 맘대로 할 겁니다. (일동웃음)
제가 이렇게 말하니까 제 아내가 조마조마한 모양입니다.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가지고, 평소에 부드러운 여사님이신데. (일동웃음) 어쩔 줄 모르는데 괜찮습니다. 가는 마당에, (일동웃음) 제대말년 아닙니까? (일동웃음)
정권은 심판받았지만 모든 정책이 심판받은 건 아니다
여러분, 국민의 뜻입니다. 정부가 국민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심판을 받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 불만 없습니다. 그대로 겸허히 수용합니다.
그런데 5년 전에 그 정부의 국민적 지지가 지금보다 꼭 높았던 것도 아니거든요. 그리고 너무 심판 이야기를 하는데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심판받았으니 교육정책이든 부동산정책이든 새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말도 하지마라, 그렇게는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정권은 심판받았지만 ‘그러므로 참여정부의 모든 정책이 다 틀렸다’ 이렇게 심판받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가 열어주고 막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책에 대해서는 자유롭고 활발한 토론이 가능하도록 국민들의 생각을 열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결국 정권은 심판받았지만 정책은 또다시 하나하나 점검하고 분석하고 토론하고 검증해서 실수 없이 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누가 지금 정책에 대해 말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래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려받은 경제위기 제대로 극복했다고 평가
경제에 대해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국민소득 1만2000불 정도에서 정부를 넘겨받았는데 올해 2만불로 갔습니다. 물론 환율 덕은 봤습니다만, 2만불 될 때 환율 덕을 안 본 나라 있습니까? 주가 세배 오른 것도 환율 덕을 본 것은 아니겠죠. 경제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지표 가운데 가장 적절한 것이 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출, 외환보유고, 저는 다 제대로 온 것 같습니다. 5년 전인 2003년에 경제가 3.1% 성장했습니다. 2003년, 2004년 내내 신용불량자, 금융위기 문제로 씨름했습니다. 그리고 기름값이 두배, 두배 반 계속 올랐습니다. 환율은 계속 하락했습니다. 저야말로 위기경제를 물려받았습니다. 지금 경제가 위기입니까? 정상이죠.
노무현의 실력은 경제를 얼추 정상으로 올렸을 때 5%밖에 안됐습니다. 5% 조금 못 미칩니다. 위기를 물려받지 않고 정상적인 상태에서 열심히 했더라면 5% 정도가 제 실력이라고 그렇게 인정하겠습니다. 성장률이 과연 대통령에게 달린 것인지 모르지만 5%를 제 실력으로 인정하겠습니다. 조금 부족한 것은 봐주시고요.
경제성장률이 3.1%에서 5%까지 왔으니 만일 지금이 위기라면 다음 경제는 적어도 6%, 7%까지 가야 정상이죠. 그래서 6%로 가면 다음 정부의 실력으로 제가 인정하고 그때 존경심을 가지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존경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겠습니다. 7% 가면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서 노무현 경제는 5%밖에 못 갔으니까 6%, 7%로 가면 누구누구 경제라고 이름 붙이고 저도 같이 존경심을 표시하겠습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면, 제가 경제를 망친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양극화 통계는 지금 시장소득 통계로 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나라는 다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합니다. 가처분소득을 놓고 보면 2004년보다 나빠진 것은 없습니다. 정말 눈물겹게 정부가 잡았습니다.
비정규직 통계는 인정하지만 그 안의 절반은 자발적인 비정규직입니다. 그러나 이 통계가 무더기로 돌아다니고 있지요. 사교육비가 30조원이라는 통계는 정확한 통계가 아닙니다. 잘못된 통계입니다. 하여튼 저한테 유리한 통계는 안돌아 다녀요. (일동 웃음)
경제문제, 무리한 경기부양책 없이 원칙대로 풀어
5년 전에 제가 신용불량자 문제에 부닥쳤습니다. 심정 같아서는 어떻게든 공적자금을 마련해서 -공적자금 마련해 줄 국회도 없었지만- 화끈하게 밀어주고 싶지요. 그러나 자칫 잘못 건드리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서 그때까지 빚을 잘 갚았던 사람도 전부 안 갚기 시작하는 경제주체의 왜곡된 행동이 걷잡을 수 없이 불 붙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2년 내내 고생하면서 신용불량자 문제를 잡았습니다. 그 제도는 지금까지도 가동되고 있습니다. 신뢰와 시장원리, 경제의 원리를 중시하고 존중하기 위해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포퓰리즘 정책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신용불량자정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정책, 자영업자정책, 비정규직정책 등 그 밖에 모든 정책들도 문제를 즉시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조사하고, 분석하고, 여러 시뮬레이션과 수없는 토론을 거쳐서 하나하나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세상의 요구는 빗발쳤습니다.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들이 정말 아우성을 쳤습니다. 뭐하냐고 매일 두드려댔지만 저는 무리한 경기부양책을 쓴 일이 없고 준비 없는 정책, 검증되지 않은 정책은 쓰지 않았습니다. 또박또박, 하나씩하나씩 해서 지금은 정상적인 경제, 경쟁력 있게 굴러가는 경제가 됐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이 불도저 경제의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식경제 시대입니다. 속전속결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경제도 법칙이 있으므로 원리를 존중하고 합리적이고 신중하게 정책을 이끌어 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 차별화가 善’은 포퓰리즘…활발한 정책토론 있어야
참여정부 정책과 차별화하면 무조건 선이다. 이것은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자체를 가지고 제가 이러쿵저러쿵 시비하지 않아도 국민들 사이에서 토론이 일어날 것입니다.
제가 왜 여기서 이 말씀을 드리느냐면, 참여정부를 심판하는 것이 새정부의 전략, 새정부가 국민들한테 지지를 받는 방법인 것처럼 하면서 계속 참여정부 정책을 속전속결 식으로 무너뜨리는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물론 충분히 연구했겠지만, 그래도 한 번 더 두드려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왜 저렇게 조급할까…. 제 결론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옛날에 미국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ABC정책’이라는 게 있었다고 합니다.(Anything But 클린턴) 지금 이거는 ABN입니까?
참여정부의 모든 정책은 2003년 하반기에 로드맵이 완성됐습니다. 그리고 수없는 토론을 거쳤습니다. 소금을 더 뿌리지 않으면 저도 오늘로 이야기를 그만할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소금을 뿌리면 저도 상처를 입겠지만 계속 해보자, 그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는 국민들의 역량 믿어
정초에 송구영신하는데 송구만 가지고 너무 오래 끌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분명히 확신합니다. 이리가든 저리가든 무슨 짓을 하건, 몇 년 만에 대한민국이 망하진 않는다, 특히 우리 국민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감당할만한 역량과 힘이 있고 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경제 자랑하니까 ‘네가 했냐? 국민이 했지'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바로 그 점입니다. 저는 제가 어떻게 했든 우리 국민들이 이 정도 경제는 만들어낼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해 덕담은, 다 잘될 것입니다. 원자재부터 여러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지만, 다 잘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해 사업 잘 되시고요. 그리고 가정 일에도, 개인 일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출처 : 청와대브리핑 http://www.presiden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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