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학【美學】
<한옥미학 7> 창과 문
by 禱憲
2010. 8. 1.
한옥에서는 창과 문의 구별이 없다. 그래서 ‘창문’이다. 서양에는 없는 단어이다. 사람이 다닐 만하면 문이요, 그렇지 않으면 창인데, 딱히 구별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몸을 잔뜩 웅크려야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문도 많고 문지방을 높여 기어오르듯 통하는 문도 있다. 형식이나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내서 쓰면 그만이라는 노장사상 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이 반영된 개념이다. | |
창은 문살을 통해 주역의 궤를 장식문양으로 활용한다. 천지 운행의 원리를 인간살이에 견줘 기하학적 구성으로 단순화했지만 일정한 변화를 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안정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하다. 중국처럼 현란하거나 과도하지 않고 일본처럼 단조롭고 지루하지 않다. 한국다운 중용과 조화의 균형미이다.
한옥의 창을 살려내는 것은 한지라는 창호지이다. 반투명 재료이기 때문에 햇빛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햇빛을 사람의 온기로 바꾸기도 하고 창살에 그림자를 실어 문양에 입체감을 주기도 한다. 먼동 틀 때에는 청회색으로 시작해서 한 낮에는 어머니 젖무덤의 뽀얀 속살로 변했다가 해질녘에는 붉은 자줏빛을 발한다.
창은 기둥과 보와 협력해서 흰 회벽을 분할한다. 몬드리안이 그토록 도달하고 싶어 했던 구성미이다. 한옥의 구성분할은 선비의 추상같은 기개를 드러내긴 하지만 몬드리안처럼 계산적이거나 차갑지는 않다. 어딘가 숨 쉴 틈 하나 남겨서 정 나눌 구실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가족살이 장면을 반영하는 기막힌 리얼리즘으로 발전할 수 있다. 행랑채를 제외하면 같은 창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제각기 크기와 형상을 가져 개별적 자존감을 지키면서도 서로 정답게 어울린다. 어미가 자식을 데리고 방안에서 편하게 노는 모습이다.
한옥의 문은 크게 솟을대문과 중문으로 나눌 수 있다. 솟을대문은 집의 얼굴이다. 양반의 위엄을 드러내면서도 집안 전경을 바깥 세상에 살짝 보여주는 소통의 통로이다. 멀리서 보면 불쑥 솟았지만 열린 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집안 전경은 의외로 섬세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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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동 한규설 대감댁 햇빛은 한옥의 또다른 주인다.한옥은 햇빛 을 가장 잘 받고 햇빛을 가장 잘 살려내는 건물이다.한옥이 햇빛을 받는 통로는 문이다.햇빛이 창호지로 들어오면 문식(文飾)을 만들 어낸다.문식은 예(禮)를 통해 얻어지는 교양 있는 미적 형식이다. | |
목재건축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지붕 아래 옹기종기 모여 어울리는 모습을 문틀을 통해 액자 속 풍경처럼 보여준다. 중문은 좀 더 차분하고 소박하다. 채와 채를 이어주는 속 통로이기 때문에 채와 채 사이의 예절을 중시한다.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와 안채, 행랑채와 사랑채 등 각 영역의 주인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구별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 |
-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출처]네이버캐스트 :: 오늘의 집 > 한옥미학 2010.04.05.
http://navercast.naver.com/home/koreanstyle/2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