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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학【美學】

<한옥미학 8> 자경

by 禱憲 201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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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

방에 앉아서 내 집의 일부를 본다는 것의 의미

한옥 속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독특한 장면이 눈에 잡힌다. 창이나 문을 통해서 보는 장면이 집의 일부인 경우이다. 창문에 잡히는 풍경요소의 종류는 자연요소, 마당, 담, 집의 일부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집의 일부를 통한 풍경작용은 그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에 별도의 현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경(自景)’이다. 말 그대로 ‘나 스스로, 즉 내 집의 일부가 풍경이 된다’는 뜻이다. 언뜻 들으면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대문이 있는 집이라면 대문을 통해 집의 일부를 풍경요소로 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옥의 자경에서는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풍경요소로 삼으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풍경작용이 대문이 아니라 집 속에서 일어난다는 추가 조건이 붙는다. 집 안에서 창문을 열면 집의 일부가 풍경요소가 풍경작용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두곡고택집의 일부를 풍경요소로 삼는 자경은 단순한 풍경감상을 넘어 내 집의 살림살이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살피라
는 뜻을 포함한다.

 

  

이것 또한 모든 집에서 일어나는 상식적인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아파트만 되어도 문을 열면 부엌이나 거실 등 실내 일부가 문을 통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옥의 자경은 이런 차원이 아니다. 풍경으로 보이는 장면이 집의 외관인 경우가 많다. 집 안에 앉아서 창문을 여니 집의 외관이 보인다는 뜻이다. 안과 밖이 뒤집어지거나 아니면 집이 담 밖으로 길게 휘어져 나와야 가능한 얘기처럼 들리는데, 그 비밀은 한옥의 독특한 건축적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건물 전체가 여러 채로 나누어 구성되고 그 채들에 꺾임이 많으며 그 사이에 여러 개의 마당이 개입한다는 특징이다. 방이 앞뒤로 모두 외기를 면한다는 특징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구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다보니, 문을 열면 집안에 앉아서 내 집의 외관 일부를 풍경작용으로 보고 즐길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내가 내 집의 외관을 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파트에 사는 현대인들은 자기 얼굴은 하루에도 수 십 번씩 거울에 비춰보며 ‘거울아 거울아~’를 외쳐대지만, 정작 자신이 사는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특별히 관심을 가질만한 특기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심심한 콘크리트 건물에 똑같은 창이 쭉 나고 숫자나 호수로만 구별을 하기 때문에 밖에서 볼 때에는 내 집, 네 집을 구별할 필요성이 없어진다. 빨래 색깔 정도나 구별 기능을 가질 뿐이다. 집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은 점점 불가능해진다.

 

집밖에서 만이라도 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문제는 안 생겼는지, 집의 분위기와 앉은 품새는 잘 유지되는지 등등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물며 이것을 집 안에 앉아서 창문을 통해 풍경작용으로 감상을 겸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옥은 이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자경이라는 독특한 풍경작용을 통해서이다. 한옥에 채 분리와 꺾임이 많고 다시 이것을 여러 겹의 마당이 에워싸는 이유이다. 집 안에 앉아서 내 집의 일부를 볼 수 있는 공간구도를 의식하고 집을 짰다는 뜻이다. 내가 내 몸을 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행동의 의미를 잘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것을 집에 심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증자의 [일성록]과 나르시시즘

자경은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 이상으로 교훈적 내용을 많이 담는다. 그래서 한옥이 유교정신을 반영한 집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내가 내 몸을 보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동양에서는 증자 의 [일성록]에 나오는 “하루 세 번 내 몸을 돌이켜 살핀다”는 구절이 대표적이고 서양에서는 나르시시즘 이 대표적이다. 같은 행동을 놓고 그 내용은 두 문명이 다른 만큼 다르다. 동양에서는 이를 자기 수양의 한 과정으로 본 반면, 서양에서는 자아도취를 통한 자기 각성으로 보았다.

  

 

용흥궁 안채 안방에서 문을 열면 대청 건넛방의 문살이 풍경요소로 들어오는 경우가 안채의 자경 작용 가운데 제일 전형적인
장면이다.내 방의 문살과 건넛방의 문살이 한데 어울리는데 이는 교열을 정리하는 집안 대소사를 잘 챙기고 식구들을 간수하라
는 뜻(왼쪽)김동수 고택 사랑채 사랑채도 안채와 같은 공간구조를 가지면 자경이 일어날 수 있다.(오른쪽)

 

 

증자의 가르침은 단순히 내 몸에 때가 안 묻었나 살피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몸을 살핌으로써 마음가짐도 살필 수 있다. 몸가짐을 반듯이 하면 마음가짐도 반듯해진다는. 유교다운 형식미의 핵심 개념이다. 한 평생 반듯하게 살아온 선비는 멀리서 걸음걸이 하나만 봐도 구별이 된다. 마음과 정신은 숨김없이 그대로 외관과 몸가짐에 드러난다. 집 안에 앉아서 내 집의 모습을 살피는 자경작용도 마찬가지여서, 창호지가 찢어지고 문짝이 휜 것을 찾아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집을 사용하는 나와 식구 구성원의 마음과 정신상태가 어떠한지 까지도 살핀다는 의미이다. 식구의 마음이 편치 않으면 그 구성원이 거처하는 방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그런 상태가 반영되게 마련이라는 내심일체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내심일체라는 가정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받아들이는 쪽에서 대상에 대해 한 없는 인(仁)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심일체라는 개념 또한 유교다운 형식미의 전형이고 인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유교정신의 출발점이니, 이 둘을 자경이라는 풍경작용으로 구현해낸 한옥은 가히 유교문명을 대표하는 주거형식이라 할 수 있다.

 

나르시시즘은 신화 자체에 한정시키면 자기애에 빠진다는 다소 부정적 의미를 내표한다. 좀 더 분석해보면 서양문명의 중요한 세계관이 담겨있다.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을 좀 더 발전시켜 인격형성 과정을 분석하는 데 적용했다. 단순히 자신의 육체만 보고 성적 대상으로 삼는 단계는 아직 미숙한 오토에로티시즘(autoeroticism)으로 봤고 여기에 자신의 정신적 정체성을 더할 때 비로소 성숙한 나르시시즘에 이른다고 했다. 동서양 모두 육체와 정신의 합일을 가르치고 있는데, 동양은 이것을 수양의 의미로 해석해서 육체를 정신에 종속시킨 반면 서양은 인격의 완성으로 해석해서 둘 사이의 동등한 통합을 지향한다. 한옥의 자경에서는 굳이 둘을 구별할 필요는 없다. 한옥의 자경작용에서 관찰되는 관음증의 느낌은 서양적 의미의 오토에로티시즘 단계로 분명 포함한다. 그러나 이것이 핍쇼(Peep Show)에 머물지 않고 집 전체에 통일된 정체성을 주고 궁극적으로 집안 구성원 사이의 화목을 돕는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점에서 나르시시즘과 증자의 가르침을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머니의 치마폭 같은 안채의 ‘ㅁ’자형 공간

자경은 사랑채와 안채에서 모두 일어날 수 있는데, 안채의 자경작용이 특히 독특하다. 안채를 안채답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사랑채가 앞에 행랑마당을 가지면서 집 전체를 상대하는데 반해 안채는 집의 깊숙한 곳에 은밀히 자리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한옥의 안채는 특히 ‘ㅁ’자형이라는 독특한 공간구조를 갖는다. 이 형식은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공간유형이지만 한옥 안채의 ‘ㅁ’자형은 그 은밀함이 특히 심하다. 행랑마당은 남자들의 대외적 작업공간이기 때문에 개방적이고 트인 반면 안마당은 폐쇄적이고 스케일이 촘촘해서 여러 방과 채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관가정 안채 안채는 자경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인데,안채 특유의 공간구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풍경요소가 창문
속으로 들어온다.이는 유교문명 아래에서 여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의미를 반영한 결과이다.

 

 

자경이 일어나기에 좋은 조건이라는 뜻이다. 창문만 열만 집의 다른 일부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제일 대표적인 경우가 안채 안방에서 문을 통해 대청 건너편을 바라보는 경우이다. 대청을 기준으로 좌우에 방이 배치되는 구조에서는 사랑채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풍경작용인데 사랑채는 이런 공간구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는 안채의 전형적인 풍경작용이라 할 수 있다. 안채의 자경 작용은 반드시 대청을 낀 좌우대칭 구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채 분할이 심한 곳 또한 안채이기 때문에 집의 일부가 작게 조각나면서 창문을 통해 다양한 풍경요소로 들어온다.

 

안채의 자경 작용은 유교가 여성에 대해서 갖는 기본 인식을 반영한 결과이다. 남편과 아내를 지칭하는 ‘바깥양반’과 ‘안사람’ 혹은 ‘집사람’이라는 말이 말해주듯, 여성이 집안 깊숙한 곳에서 안일을 책임지는 일을 맡던 시대, 집안이 제대로 반듯하게 유지되는지 거울을 보듯 항상 챙기라는 뜻이다. 놀이기능일 수도 있다. 바깥나들이 한번 맘 편하게 하기 힘들었던 시절, 집의 일부를 대상으로 삼아 즐기는 풍경놀이는 감옥살이 같았을 수 있는 여성들의 일상생활에 조그만 위안거리를 줬을 수 있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출처]네이버캐스트 :: 오늘의 집 > 한옥미학   2010.04.12.   http://navercast.naver.com/home/koreanstyle/2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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