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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학【美學】

<한옥미학 10> 한옥의 지붕

by 禱憲 201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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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지붕

동북아 건축에서 지붕은 주역의 대장괘를 옮긴 것이다. “상고 시대 사람들은 혈거로 생활을 하며 들에서 거처하였는데 후세 성인들이 그것을 가옥으로 바꾸어 지붕마루를 위에 만들고 서까래를 아래로 깔아 바람과 비를 피하게 하였으니 이는 대개 대장괘에서 취한 것이다”라고 했다. 지붕이 대자연의 장미(壯美)의 상태인 대장괘를 본떠 만들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대장괘가 드러내는 구체적 심미성이 장미이다. 한옥에서 장미는 인간 중심적인 특징을 갖는다. 인간의 역량에 대한 적극적 긍정을 전제로 인간의 감정을 앙양, 분투케 함으로써 자연에 대해 공포, 재난, 비극 등의 부정적 요소를 극복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는 유교다운 인본주의의 핵심이다.

 

 

수애당 전경 대장괘가 주는 대표적 미학이 장미(壯美)이다. 인간의 인내와 의지를 굳건히 드러내 강건함을 표현하는데, 이는 선비의 기개를 드러내는 집의 인상과 같은 말이다. 집의 전경을 보면 주인의 성품과 가문의 가풍을 알 수 있으니 이를 인상이라 한다.

 

 

한옥의 지붕은 멀리서 보면 집의 인상을 결정한다. 담과 행랑채, 다시 그 뒤로 사랑채와 안채의 지붕이 중첩되면서 유교 가문의 기풍과 선비의 품격을 드러낸다. 이는 사람에게 요구되던 최고의 덕목이었으니 집과 사람은 인상을 공유하며 동의어가 된다. 지붕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서양의 신사도도 대략 이와 유사하니 지붕은 인공적 형식미를 대표한다.

 

한옥 지붕의 조형미는 단연 매끄러운 곡선이다. 한국다운 곡선미의 대표적인 예로, 한 획을 휙 그은 서예의 부드러운 힘 같기도 하고 북소리에 맞춰 돌아가는 가락 같기도 하다. 곡선으로 휘었지만 정면에서 보면 갓을 눌러쓴 선비의 절제된 몸가짐을 보여준다. 추녀 밑으로 다가가 올려다보면 흥에 겨워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몸짓이다. 한옥의 처마 곡선은 단연 최고이다.

 

한옥의 지붕은 채 사이의 위계와 관계를 반영한다. 집안을 대표하는 책임을 지는 사랑채는 지붕도 그러해서 행랑채나 안채의 지붕을 품고 이끈다. 반가에 요구되는 엄격한 계급구조를 지키되 그것을 넉넉한 품으로 품어내려 애쓰는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계급 위계가 없는 동기간의 관계일 때에는 누구보다도 흥겹게 어울린다.

 

 

고성 어명기가옥 한옥 지붕의 처마 선을 일반화시키면 한국다운 곡선의 미학이 된다. 옷소매와 가락, 고름과 치마폭, 초가와 뒷동산이 모두 그렇다. 한옥 지붕은 화들짝 하늘을 향하지만 동시에 땅도 굽어보는 중용의 균형에서 아름다운 곡선이 나온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출처]네이버캐스트 :: 오늘의 집 > 한옥미학   2010.04.26.   http://navercast.naver.com/home/koreanstyle/2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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