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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학【美學】

<한옥미학 12> 거울작용

by 禱憲 201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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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작용

거울로 비춰 본 듯, 거울작용

한옥을 다니다 보면 가끔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주로 문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볼 때인데, 비슷한 장면이 앞뒤로 반복되는 경우이다. 거울에 비춰본 것처럼 닮았다. 액자의 모양새와 풍경요소의 모양새가 닮은 경우로 ‘거울작용’이라 부를 수 있다. 넓게 보면 중첩 현상의 하나이다. 중첩에는 공간에 의한 액자중첩 이외에 요소중첩도 있게 되는데, 이때 액자와 풍경요소 사이에 닮은꼴이 어느 선 이상을 넘어서면 거울작용이 된다. 주로 문을 통한 풍경작용에서 많이 일어난다.

 

솟을대문이나 중문 등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보면 종종 문과 닮은 모습이 액자 속에서 반복되는 신기한 장면이 나타난다. 닮은 요소는 지붕인 경우가 제일 많다. 문에 달린 지붕이 풍경요소에서 반복되는 식이다. 한옥에서는 기와 얹은 지붕이 ‘약방의 감초’처럼 온갖 곳에 다 들어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문과 담 위에까지 약식으로 소품화한 기와지붕을 얹는데, 이것이 액자형식을 이루면서 풍경요소의 진짜 지붕과 겹쳐질 경우 거울작용이 일어난다. 기와의 역할이 중요하다. 들쭉날쭉 시각적 자극이 강한 부재이면서 작은 크기가 가지런히 반복되기 때문에 조금만 반복해도 닮은꼴이 강조되기 쉽다.

 

문에서 본 지붕이 문 속 풍경요소에서 똑같이 반복된다. 액자를 이루는 문의 지붕이 마치 액자 속에서 증식해서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때 증식과 반복을 유발하는 매체를 거울의 반사작용으로 설정한 개념이 거울작용이다. 실제 모습을 보더라도 거울작용이 일어나는 장면에서는 마치 문을 거울로 비춰서 문 속에 하나 더 넣어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문이 담을 끼고 있고 문 속 풍경작용이 같은 건축형식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또 다른 거울작용의 좋은 예이다. 집이 커서 행랑채가 두 겹으로 반복될 때, 솟을대문 양옆에 늘어선 바깥쪽 행랑채와 안으로 한 번 들어온 곳에 있는 두 번째 행랑채가 문을 매개로 앞뒤로 반복되면서 중첩되는 경우이다. 이때에도 액자와 풍경요소가 빼다 박은 듯 닮기가 쉽다. 기와지붕 단독으로 일어나는 경우보다 시각적 자극은 약하지만 좀 더 갖춰진 건축형식 사이에 일어나기 때문에 그만큼 안정적이고 좀 더 건축답다. ‘담-벽-지붕’으로 이어지는 수평 요소들의 높낮이가 앞뒤로 비슷하게 맞을 경우 마치 하나의 장면이 중간에 조금 어긋난 정도로만 보이면서 거울작용은 감쪽같다. 문에 달린 지붕의 서까래와 풍경요소 속 기와지붕의 볼록 튀어나온 부분도 부재 종류는 다르지만 시각적으로 유사성을 가지면서 거울작용을 돕는다.


충효당 지붕을 얹은 액자 속 풍경요소 역시 지붕을 얹고 있다. 완전 대칭은 아니지만 액자를 거울에 비춰본 것 같은 유사성을 갖는다.

 

 

거울작용의 의미

거울작용은 공간 켜를 여러 겹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벽을 거울로 처리하는 트릭 기법에서 많이 나타난다. 서양건축에서도 복합공간이 새롭게 등장하던 1960~70년대에 벽에 거울을 바르는 다소 유치한 기법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일부 설치미술 작가들은 거울을 이용해서 공간에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한옥에서는 이보다 훨씬 이전에, 그것도 거울 같은 직접적 소품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건축 구성만으로 은유적으로 거울작용을 만들어 즐겼다. 게다가 트릭이 아닌 실제 현실이었다.

 

 

창덕궁 연경당 담과 지붕과 창의 위치가 수평이 어긋나기는 하지만 몽타주 기법으로 생각하면 둘은 거울을 보듯 닮은 장면이 된다.

 

 

거울작용은 ‘창과 풍경의 하나됨’이 더 적극적으로 발전한 경우이다. 궁극적 목적은 어울림의 미학이다. 액자는 나, 즉 주체이고 풍경은 너, 즉 객체이자 대상이다. 나와 너 사이에는 나에서 너로 향하는 일방통행식 관계가 생기는 것이 통상적이다. 나는 나의 주관과 가치관에 의해 객체와 대상, 즉 주변을 정리하고 정의한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런데 거꾸로 너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에는 내가 객체요 대상이 된다. 너와 내가 이렇듯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고수하면 반드시 다툼과 대립이 발생하게 되어 있다. 서양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나의 능력과 의지에 의해 주변을 정리하고 다스리려는 입장을 갖는다. 반면 한옥의 거울작용에서는 나를 너와 닮게 만들어서 다툼과 대립의 소지를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각자의 존재를 충분히 지키면서 서로 닮는 쌍방향 교류가 요점이다. 생활 속 상식으로 환원하면 ‘역지사지(易地思之)’ 쯤에 해당된다.

 

나와 너, 주체와 객체, 액자와 풍경 사이에 분별이 없다. 분별이 없으니 우열도 없다. 본디 우열이란 분별하려는 부질없는 욕심에서 발생한다. 내가 남과 다르고 싶은 마음은 백이면 백 남보다 우월하고 싶은 욕심으로 결론난다. 거울작용에는 이런 것이 없다. 서로 상대방을 열심히 닮아 무심하게 어울리려는 평등한 통합을 지향한다. 이런 관계에는 사실 친소를 따지는 것이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둘이 친해야 가능한 일이다.

 

 

‘문양종합’에 의한 소극적 거울작용

거울작용의 또 다른 좋은 예로 ‘문양 종합’ 혹은 ‘부재 종합’이란 것이 있다. 소극적 거울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액자 속 풍경요소가 집이면서 몸통만 보이고 지붕은 살짝 암시만 하는 경우이다. 지붕이 빠진 불완전한 모습이다. 지붕은 액자에 해당되는 대문이 제공한다. 대문은 지붕만 덩그러니 얹어서 역시 불완전한 모습이다. 이 둘, 액자의 지붕과 풍경요소의 몸통을 합하면 한옥 한 채의 완전한 모습을 보게 된다. 거리 차이가 있어서 모서리가 그냥 집 한 채를 보는 것만큼 완벽하게 맞진 않지만 상상으로 바느질을 해서 둘을 이어 붙이면 한 채의 한옥이 훌륭하게 완성이 된다. 약한 의미의 몽타주 기법이기도 하다. 각자는 불완전한데, 서로 합하니 비로소 완전한 상태에 이른다.

 

 

수애당 거울작용의 요체는 서로 닮자는 것이다. 분별 때문에 일어나는 다툼과 대립을 피해 어울림을 추구한다.

귀봉종택 액자의 기와와 담이 풍경요소의 벽과 문과 퇴와 댓
돌과 합해지면 비로소 한옥의 기본구성이 완성된다.

 

 

이런 느슨한 조합은 이분법에 의한 명확한 편 가르기를 부담스러워하는 한국 특유의 국민성 가운데 하나이다. 세상은 짝 요소로 이루어지고, 이것들은 대립적 관계를 갖기가 쉽다. 흔히 인문학에서 ‘이항대립’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도 좋은 예이다. 형식은 액자이고 내용은 풍경요소인데, 둘은 자칫 ‘제로섬 관계’에 놓이기 쉽다. 액자를 강조하면 풍경이 죽고, 풍경을 강조하면 액자가 죽는다. 둘이 양보를 안 하고 자기 존재만 고집하면 다툼이 일어나고 한쪽이 죽는다. 이긴 쪽도 승자가 아니다. 풍경 없는 액자는 결국 창고에 처박혀서 손님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한다. 액자 없는 풍경은 공중에 붕 뜬 허상이 된다. 어울려야 둘 다 살 수 있다. 사람살이의 일반론과 전혀 다르지 않다.

 

거울작용에서는 액자가 스스로 풍경이 되어버림으로써 제로섬 관계를 극복한다. 극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앞에서 보았듯이, 서로 부족함을 메워 비로소 완성된 상태를 만든다. 흔히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나 혼자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지극히 작은 것일 뿐이라는 교훈을 깨우쳐준다. 액자를 이루는 서까래와 풍경요소를 이루는 처마 선이 사이 좋은 유사성을 가지면서 형식과 내용 사이의 구별을 없앤다. 액자와 풍경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지 않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키워준다. 둘은 같이 작동하고 협력해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런 장면은 솟을대문을 통해 동네에 내 집의 모습을 친절하게 소개하는 기능을 갖는다. 집 전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모습을 샘플로 삼아 집밖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너무 많이 보여주자니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있고, 너무 조금만 보여주면 깍쟁이 같다. 둘 사이의 절묘한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것이 문양종합에 의한 소극적 거울작용이다. 바깥에 대한 의사소통과 주변과 어울리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친절과 환영의 의미이다. 농촌사회의 지배세력이 주변의 피지배계급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전형적 태도이다. 한옥이 유교문명 시대 때 반가의 주거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1. 충효당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생가로 보물 제 414호이다. 조선 중기에 총 52칸의 규모로 지어졌다.

  2. 창덕궁 연경당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에 있는 목조건물. 1828년(순조 28) 진장각(珍藏閣) 옛터에 세워졌다. 창덕궁에 있는 다른 건물이 단청을 한 데에 비해 연경당은 하지 않았다. 매우 단촐하고 아담하여 조선시대 사대부의 집 형태를 잘 보여준다.

  3. 수애당

    경북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수애 류진걸(柳震杰)이 지은 사가(私家)로서 1985년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춘양목(春陽木)을 목재로 1939년에 지어졌으며 조선 말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4. 귀봉종택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臨東面) 천전리(川前里)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 귀봉 김수일의 종택으로 조선 현종 원년(1660)에 건립된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종가양식의 건물이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출처]네이버캐스트 :: 오늘의 집 > 한옥미학   2010.05.09.   http://navercast.naver.com/home/koreanstyle/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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