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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학【美學】

<한옥미학 13> 몽타주

by 禱憲 201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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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몽타주

병풍, 조각 난 풍경을 다시 합하기

한옥에는 창이 많지만 전면유리는 아니다. 막힘과 뚫림이 적절하게 교대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액자가 되는 곳은 뚫린 부분이니, 이는 액자가 여러 개 늘어서게 된다는 뜻이 된다. 뚫린 부분은 위치, 간격, 크기, 형태 등이 규칙적이기도 하고 불규칙적이기도 하다. 어쨌든 풍경작용은 여럿으로 조각난다. 대청 뒷면은 보통 두 장의 큰 창으로 이루어진다. 앞면의 기둥 열도 얼개로 짜인 개방 창으로 볼 경우 역시 창을 만든다. 기둥이 세 개면 창이 두 개, 네 개면 창이 세 개인 식이다. 방의 한쪽 면이 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창은 보통 두 개가 나지만 세 개 이상 나는 수도 있다. 창이 여럿인 장소 앞에 서서 조각난 작은 풍경들을 한 화면 안에 넣어서 볼 경우, 이것들은 다시 합해져 하나의 큰 풍경을 이룬다. 연작, 즉 병풍 개념이다.

 

회화에서의 병풍이라는 형식을 건축으로 구현한 한옥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창의 개수는 곧 병풍의 폭의 개수가 된다. 두 개면 두 폭 병풍, 세 개면 세 폭 병풍이다. 병풍은 좌우로 작은 풍경들이 이어지는 것이다. 앞뒤로 이어지는 중첩과는 또 다른 공간구도이다. 합해 보면, 종횡의 양 방향으로 연작이 일어나는 것이 된다. 그만큼 한옥의 공간구도가 풍부하고 깊다는 뜻이기도 하다.

 

 

맹사성 고택 액자가 다르기 때문에 두 장의 풍경도 다르게 나타나지만 풍경요소의 연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병풍을 이룬다. ‘비대칭 병풍’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한옥에서 병풍을 만들어내는 기준은 분산성과 규칙성이다. 상반되는 조건인 두 기준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병풍 작용은 풍경요소가 작은 것 여러 개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분산성을 기본적 특징으로 갖는다. 너무 분산적이 되면 병풍으로 남기 어렵다. 분산성은 풍경요소들이 작은 장면들로 나누어지는 선까지 허용된다. 한 번 나눠진 다음에는 반대로 일정한 규칙성을 가져야 서로 어울려 하나의 큰 연작을 만들 수 있다. 규칙성의 조건은 연속성과 유사성이다. 너무 많이 떨어져도 안 되고 너무 달라도 안 된다.

 

맹사성 고택주석1 대청 뒷면을 보면 창 두 장이 위치는 동일한데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오른쪽 큰 창은 문짝이 반쯤 열려있다. 분산성도 느껴지나 전체 장면은 아직 병풍에 머문다. 좌우가 다른 비대칭 병풍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창의 개수도 중요하다. 두 개면 병풍으로 느끼기에는 좀 부족하고 세 개면 안정적이다. 네 개면 확실하지만 한옥에서 한 번에 창이 네 개 연달아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세 개인 경우는 많진 않지만 제법 있는 편이고 두 개가 제일 많다. 대청 앞면 기둥 열이 만드는 액자도 마찬가지다. 두 칸이 제일 많고 세 칸인 경우도 있다. 대청 양 옆 방 앞에 퇴가 나고 기둥이 세워지면 대청 위에 장소를 잘 잡을 경우 창이 네 개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몽타주, 조각 요소들이 어울려 하나의 큰 그림을 그리다

어쨌든 두 개 이상의 조각 난 작은 풍경이 합해져 전체 풍경을 만들게 된다. 작은 풍경들 사이의 유사성은 또 다른 중요한 기준이다. 많이 다르면 시각적으로는 합해질지 모르나 내용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지 못한 채 단순 병렬에 머문다. 관가정 행랑채를 보면 완전히 다른 두 장면이 나란히 병렬되어 있다. 왼쪽은 집의 일부분인 자경이고 오른쪽은 자연물인 차경이다. 두 장면은 이질성이 커서 둘을 합해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기는 힘들어 보인다. 창의 액자형식에 분산성이 없기 때문에 콜라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단순 병렬로서 병풍을 이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자연요소와 인공요소 사이의 병렬을 통한 종합화 작용이다.

 

 

관가정 액자는 같지만 풍경요소가 다르다. 풍경작용의 형식은 단순병렬인데, 이것을 대립으로 볼지 어울림으로 볼지는 해석의 문제로 넘어간다.

 

 

유사성을 가지면 이어 붙여 큰 스토리를 꾸밀 수 있다. 몽타주이다. 조각 난 풍경요소를 하나씩만 보면 집의 일부분만 보인다. 기본적으로 서로 다르지만 같은 집의 일부분인 점에서 유사성도 크다. 이런 요소들이 조각 난 상태로 병렬되어 있다. 이런 장면을 보면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조각 난 부분의 나머지 모습을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복원하게 된다. 완성된 큰 전체를 보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한옥에서 몽타주는 반드시 창이 여럿으로 조각 나야 되는 것은 아니다. 액자가 하나이더라도 그 속에 담기는 풍경요소가 조각 나 있고, 이것이 관찰자의 머릿속에 전체 모습에 대한 상상작용을 유발하면 몽타주가 된다. 오죽헌을 보면, 왼쪽 조각은 지붕, 회벽, 기둥과 보 등을, 오른쪽 조각은 가지런한 서까래를 각각 조형 요소로 내놓는다. 왼쪽 조각에서는 지붕 끄트머리를 보고 나머지 전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기둥과 보가 지나가며 분할하는 회벽을 보고 벽체 나머지 부분에 난 창 등 역시 몸통의 전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오른쪽 조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을 모두 모아 이어 붙이면 집의 전모를 추측에 의해 그려볼 수 있게 된다. 몽타주 작용이다.

 

 

몽타주, 집과 친해지기 위해 기교를 부리다

그렇다면 왜 한옥은 몽타주 작용이 일어나도록 지었을까. 병풍 작용부터 먼저 생각해보자. 회화에서 병풍은 기본적으로 보관과 이동의 편리함 때문에 만든 것이다. 큰 그림을 접어서 보관하기 편하고 누각에서 연회가 벌어질 때 들고 가서 뒤 배경으로 펼쳐놓기에 편하다. 한옥에서는 이보다 좀 더 깊은 뜻이 있다. 다양성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조형의식과 국민성이 반영된 결과이다.

 

 

정여창 고택 두 장의 풍경이 끊긴 뒤 이어진다. 중간에 가려진 부분에 대해 상상작용을 유발하면서 몽타주 작용이 일어난다.

  

 

큰 것 하나보다는 작은 것 여러 개로 나눈 뒤 그것들 사이의 합종연횡에서 나오는 다양한 관계를 즐기는 국민성이다. 이것이 자칫 혼란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최소한의 규칙성을 담보한 것이 한옥에서의 병풍 작용이다. 한국 특유의 균형감각을 잘 보여주는 현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용이라는 동양의 미덕을 바탕에 갖는다.

  

중용의 균형감각은 집과 사람 사이에 더 적극적으로 적용된다. 집과 친해지기 위해 몽타주라는 기교적 조형형식을 가했다는 것이 해답이다. 집이 단독으로 통째로 존재하면 지나치게 딱딱하고 형식적이 된다. 주체로서의 사람과 객체로서의 주변 환경으로 양분되면서 이항대립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집과 친해지거나 하나가 되지 못하고 겨루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객체화된 대상에 대해서는 그것이 사람이건 자연이건 집이건 상관없이 겨루어 이기고 싶어 한다. 본능이기 때문이다. 생존본능으로서의 경쟁심이나 우월본능이다.

 

사람과 집 사이에 경쟁관계가 형성되면 일상생활이 피곤해진다. 사람은 집에 욕심을 싣는다. 집과 경쟁해서 이긴다는 것은 결국 집을 사람에게 굴복시킨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객체와 싸워 이겨 굴복시키는 목적은 하나,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지배욕, 물욕, 권력욕 등 종류도 다양하다. 집도 이런 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전제문명 시대에는 집이 사람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 버는 수단이 된다. 집은 온전한 개체가 되지 못하고 끝까지 수단과 도구로만 남는다.

 

집과 사람은 대등한 영향관계에 놓여있다. 사람들은 집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작용도 고스란히 받게 되어 있다. 집을 잘 대해주면 집으로부터 복을 되돌려 받지만 잘못 대하면 그 대가를 치러 저주를 받아 불행해진다. 너무 쉽고 당연한, 그렇기에 지엄한 세상의 기초 이치이다. 집에 정성을 쏟고 집과 친해져서 한 몸 한 마음으로 함께 살아가면 집은 사람에게 더할 수 없이 편한 잠자리를 제공하고 안정된 심리상태를 만들어준다. 몽타주는 집에 다양한 놀이기능을 부여해서 집과 친해지고 하나가 되기 위한 고도의 주거 전략인 것이다.


 

오죽헌 액자는 하나인데 풍경요소가 둘로 나눠져 몽타주 작용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이런 장면을 보면 좌우 양쪽 옆의 나머지 모습을 상상으로 복원시켜 이어 붙여 하나의 큰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싶어진다.

 

 

 

  1.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 있는 고려 말, 조선 초 문신 맹사성(孟思誠)이 살던 가옥. 고려 말의 무신 최영이 지은 집으로 그의 손자사위인 맹사성의 부친이 물려받아 대를 이어 보존하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ㄷ자 형태의 가옥으로 마당에는 맹사성이 심은 600여 년 이상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마주 서 있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출처]네이버캐스트 :: 오늘의 집 > 한옥미학   2010.05.16.   http://navercast.naver.com/home/koreanstyle/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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