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 학【美學】

<한옥미학 15> 콜라주

by 禱憲 2010. 8. 1.
728x90

콜라주

한옥의 몽타주·콜라주·바로크

한옥의 특징을 하나만 들라면 ‘다양성’을 들 수 있다. 99칸이라지만 건축면적은 이보다 작은데 넓지 않은 면적 속에 무한대로 다양한 건축형식과 조형작용을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서양의 대저택에도 여러 개의 방문이 일렬로 늘어서는 곳이 있게 마련인데, 한옥에서와 같은 ‘중첩’ 개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3차원 공간 깊이가 결여된 2차원 평면 위에 원근법에 따라 여러 개의 문을 앞뒤로 겹쳐 그린 느낌이 더 강하다. 위치를 옮겨 시선각도를 바꿔 봐도 큰 차이가 없다. 같은 조형 영역 안에 머물게 느껴진다. 한옥은 그렇지 않다. 도대체가 시선 각도를 10도만 틀어도, 앞으로 1미터만 나가도 다른 조형 영역으로 넘어간다.

 

이는 동양문명의 특징이기도 하다. 절대성을 지향하는 서양문명과 달리 동양은 천지만물의 다양성을 인정한 위에 이것에 적절히 대응하는 다양한 전략을 세워 구사했다. 가장 거시적 차원에서 ‘서양=절대주의 대 동양=상대주의’의 이분법이 성립되는 대목이다. 불교나 노장 같은 대표적 사상도 상대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좀 더 현실적 전략으로 주역의 세계관을 들 수 있다. ‘주제와 변주’의 방법론을 통해 다양성을 규칙화해서 세상 이치를 조금이라도 파악해보려는 시도이다.

 

 

청풍 후산리 고가 창문을 사선 방향에서 바라볼 경우 액자 윤곽에 왜곡이 일어나고 긴장감이 뒤 따르면서 풍경요소를 조각 내 콜라주를 만든다.

 

 

한옥에서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즐기되 최소한의 규칙성을 지켜 혼란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많이 관찰된다. 분산적 풍경작용이 대표적인 예인데, ‘몽타주-콜라주-바로크’의 세 가지가 핵심을 이룬다. 몽타주와 콜라주의 차이는 명확하지 않은데, 굳이 구별하자면 요소들 사이의 닮은꼴이 어느 정도 있으면 몽타주이고 차이가 심하면 콜라주가 된다. 풍경작용에 적용시켜 보면, 액자의 크기, 위치, 형태 등이 서로 많이 다르거나 개수가 많아지면 콜라주가 된다. 병풍 작용을 기준으로 하면 ‘변형 병풍’에 해당된다.

 

우표 세트를 생각하면 쉽다. 대부분은 세트를 이루는 여러 장이 모두 같은 크기와 형태이지만 가끔 완전히 다른 크기와 형태로 세트를 짜는 경우가 있다. 풍경작용을 이루는 액자가 이럴 경우 몽타주의 한계를 넘어 콜라주의 단계로 진입한다. 분산성이 더 심해서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면 바로크가 된다. 콜라주는 규칙성과 분산성의 중간 경계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콜라주 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한옥도 제법 되지만 많은 수는 적어도 한두 장면 정도는 콜라주 작용을 담고 있다. 유교문명의 법도를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집에서 최대한의 다양성을 즐기려는 놀이본능을 반영한 집이 바로 한옥이며, 그 바깥쪽 경계가 콜라주가 된다.

 

 

콜라주를 만들어내는 풍경작용의 조건들

한옥의 풍경작용에서 몽타주와 콜라주의 경계를 명확히 짓기란 불가능하다. 대략으로 정해보면, 액자의 개수가 3개 이상이면서 서로 닮지 않았을 때 콜라주가 일어난다. 김동수 고택 을 보면, 대청에 두 개의 액자가 나 있고 그 옆방 창이 액자 하나를 더 만들고 있다. 총 세 개의 액자이다. 대청 액자 두 개는 크기가 서로 다르고 액자 속 풍경도 다르면서 분산성을 만든다. 옆방 창에 만들어진 액자는 방문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형국이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대청 액자와 좌표 위치가 어긋나 보인다. 이것 역시 분산성을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이상의 상황들이 합해지면서 콜라주를 만들기에 충분한 조건들을 갖추었다.

 

 

김동수 고택 액자가 세 개이면서 액자와 풍경요소 모두에 일정한 분산성과 다양성이 확보되면 콜라주가 일어난다.

 

 

액자가 두 개라고 해서 콜라주가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단, 조건이 필요하다. 액자가 얌전히 있질 못하고 창살 같은 일정한 조형요소를 스스로 가질 것, 액자 속 풍경요소가 가급적 집의 일부분이면서 액자의 조형요소와 어울려 문양종합을 이룰 것, 이때 종합화의 양상이 너무 규칙적이지 않고 일정한 분산성을 가질 것 등이다. 많은 한옥이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런 조건을 갖추어서 두 개의 액자만으로 콜라주를 일으킨다. 용흥궁도 좋은 예이다. 창이 두 개인데 창 사이 여백이 적절하다. 왼쪽 창은 절반 정도가, 오른쪽 창은 삼분의 이 정도가 각각 닫혀 있는데 창살문양의 종류가 서로 다르면서 분산성을 배가시킨다. 오른쪽 창 속에 있는 건너편 방은 또 다른 종류의 창살문양을 더한다. 왼쪽 창 속에는 담과 지붕과 벽이 마지막으로 가세하면서 문양종합의 단계를 넘어섰다. 이상이 합해지면서 심하게 흐트러지지는 않았지만 콜라주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용흥궁 액자가 두 개이더라도 풍경작용을 일으키는 요소가 많으면 콜라주가 될 수 있다. 다양한 요소를 모아 하나의 큰 스토리를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액자가 분산성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경우는 긴 벽면에 창이 여러 개 나 있는 방 안 한쪽 구석에서 옆으로 창을 바라볼 때이다. 이 경우 분산성을 만드는 요인은 사선에 의한 형태 왜곡과 긴장감이다. 창이 마름모꼴이 되고 시선은 일소점 투시도 형식으로 모아지면서 액자가 변형되는 형태 왜곡이 일어난다. 액자의 왜곡은 그 속에 담기는 풍경장면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액자 윤곽에 일어나는 점증과 점감의 정도가 급해지면서 작은 풍경들 사이의 연속성은 끊기고 각 풍경은 개별 요소로 인식된다. 전체 풍경은 이런 개별 요소들을 다시 모아 짜 맞추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창문을 여닫은 정도도 콜라주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기준이다. 창호지가 반투명이기 때문에 문짝이 닫히는 정도는 시각작용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문짝이 가리는 부분은 일단 안 보이게 되기 때문에 풍경요소를 조절하게 된다. 햇빛이 비치면 문짝의 창살 자체가 풍경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문이 여러 개라면 문짝을 여닫는 것만으로도 풍경작용을 조절하는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해진다. 창이 하나라도 반쯤 닫혀서 창이 두 개인 것과 같은 조건이 되면 콜라주의 초기 상태가 나타난다. 창이 반쯤 닫힌 상태에서 닫힌 쪽 구석에 치우쳐서 창을 바라보면 풍경요소가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창이 여럿으로 늘어나면서 문짝이 불규칙하게 열려 있으면 풍경요소가 심하게 분산되면서 콜라주가 시작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조건이다. 윤증 고택 사랑채는 콜라주의 백미이다. 액자는 세 개인데 모양과 위치가 각각 다르다. 같은 벽면에 난 창들이 아니라 육면체의 세 면에 하나씩 난 창들이기 때문이다. 세 액자 모두 절반쯤 닫혀 있는데 닫힌 문의 상태가 제각각이다. 바깥 풍경요소도 다르다. 액자가 육면체의 세 면에 나 있어서 면하는 외부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화면 전체를 이루는 건물 골조는 족자로 읽힌다. 이상을 종합하면 ‘세 개의 액자, 네 장의 창문, 세 개의 바깥 풍경요소-대청 골조가 만드는 족자’가 합해져 콜라주를 이룬다.

 

 

윤증 고택 사랑채 콜라주의 백미이자, 한국의 한옥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가운데 하나이다. 집과 창은 반듯한데 문짝을 열고 닫는 정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콜라주가 일어난다.

 

 

콜라주, ‘비빔밥의 철학’을 건축적으로 형식화하다

그렇다면 한옥에서는 왜 콜라주 작용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해답은 부분들의 조합으로 전체를 구성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의 전통적 국민성에서 찾을 수 있다. 병풍이 좋은 예인데, 음식에서는 구절판을 유사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음식을 그릇에 담을 때부터 병풍 개념에 해당되는 ‘여러 요소의 연속 배치’를 공유한다. 먹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쌈 싸먹기도 유사한 경우이다. 이런 식의 음식문화는 재료의 종류가 다양한 농경문화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멕시코의 파히타나 베트남의 월남 쌈이 대표적 예이다.

 

병풍과 구절판보다 분산성이 더 강화된 예가 한복의 겹쳐 입기와 비빔밥이다. 큰 하나보다 몇 가지 부분요소의 혼성으로 총합을 구성하고 싶어 하는 한국 특유의 민족 정서이다. 왜 이런 문화가 발달했을까. 그 해답은 최종 결과를 대상에게 맡겨놓으려는 한국 정서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적 어울림’의 개념이다. 더 확장하면 한국적 상대주의의 전형적 예이기도 하다. 사람이 계산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 이외의 눈에 안 보이는 힘의 작용을 끌어들여 의탁하려는 세계관의 산물이다. 한복에서 여러 층이 겹치다 보면 자기들끼리의 어울림 작용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와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런 사실은 비빔밥에서 더 잘 확인된다. 다양한 재료가 섞이다 보면 재료들끼리 맛, 향, 색, 영양성분 등 여러 측면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만들어진다. 모든 것을 사람이 계산하고 정하고 예측한 대로 나타나게 하지 않겠다는 의도이다. 재료를 100% 사람이 원하는 대로 조리하지 않고 재료 스스로의 작용에도 일정한 역할을 맡기겠다는 생각이다.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사람의 손아귀에 묶어두지 않겠다는 인생관이다. 100명이 모여서 비빔밥을 만들면 100가지의 다른 맛이 만들어진다. 레서피라는 것이 무색해지는 한국 특유의 음식문화인데, 한국인의 조형의식 전반에 깔린 바탕이기도 하며 이것을 건축적으로 형식화한 것이 한옥에서 콜라주 작용인 것이다.

 

 

 

  1. 김동수 고택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 있는 고가(古家). 전형적인 상류층 가옥으로, 김동수의 6대조인 김명관이 1784년(정조 8년)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솟을대문을 지나 마당이 나오고 중문을 거쳐 바깥 행랑채가 있으며, 바깥 행랑채의 솟을대문을 거치면 사랑채가 나온다. 다시 안행랑채의 안대문을 들어서면 6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배치된 방들이 있다. 그 안쪽으로 안채가 있고, 안채의 서남쪽에 안사랑채가 있다. 소박한 구조로 되어 있으나 마당의 크기와 위치, 대문간에서 안채에 이르는 동선의 관계가 뛰어나 조선시대 양반의 생활양식과 풍류를 엿볼 수 있다.

  2. 용흥궁

    조선 후기 철종(1831∼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 19세까지 살던 집.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위치. 정상 정통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임금에 오른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살던 집을 잠저라 하며, 대개 잠저는 왕위에 오른 뒤에 다시 짓는다. 원래는 초가였던 용흥궁도 1853년(철종 4)에 강화 유수 정기세(鄭基世)가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뒤 1903년(광무 7)에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이 중건하였다. 좁은 고샅 안에 대문을 세우고 행랑채를 둔 이 궁의 건물은 창덕궁의 연경당(演慶堂), 낙선재(樂善齋)와 같이 당시 살림집의 유형에 따라 만들어졌다.

  3. 윤증 고택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 윤증이 살던 고택. 윤증 말년인 18세기 초에 지어졌으며, 전면에 사랑채를 두고 후면에 안채, 후면 동쪽에 사당을 두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口 자형 양반 주택이다. 크게 사랑채•안채•문간채•사당•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랑채 주변에는 담을 두지 않아 가옥 전체가 개방된 분위기다. 사랑채는 좌우 대칭적인 팔작지붕으로 만들어 균제된 입면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채 정면의 칸수는 짝수인 4칸으로 계획하여 정면 길이와 높이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조정하여 아름다운 비례를 꾀하였다. 충청도 지방의 전형적인 양반 가옥으로서 여유 있는 배치구조와 넓은 안마당, 사랑채와 안채의 높이 차이를 적게 만드는 등의 지역적 특징이 주택의 배치와 구성에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성리학자의 생각이 주택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출처]네이버캐스트 :: 오늘의 집 > 한옥미학   2010.05.31.   http://navercast.naver.com/home/koreanstyle/2771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