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학【美學】
<한옥미학 17> 공예ㆍ소품ㆍ문양
by 禱憲
2010. 8. 1.

동양 미학에는 유독 기예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기’를 손재주나 기계기술로 보지 않고 예술로 본다는 뜻이다. 우선 재료 각자의 질료로서의 본성에 충실해야 된다. 자연스러움의 한 가지로, 재료를 손재주의 수단이나 물욕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감정이입을 시켜, 나와 하나로 느끼라는 뜻이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일체감이니, 재료의 입장에서 기획하고 다듬고 손질하라는 뜻이다.
다음으로 부재의 쓰임새에 맞게 만들라고 했다. 기능미인데, 산업화를 거치면서 공예미와 갈라져 반대편에 섰지만, 원래 전통적인 동양미학에서 기능미와 공예미는 한몸이었다. | |
쓰임새에 충실하게 만들면 따로 힘들여 재주를 부리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심미성이 드러나게 되는데, 공예미의 핵심이다. 재료의 자연스러움과 쓰임새의 자연스러움이 합해지면 더할 나위 없는 기예에 이르게 된다.
기예는 ‘진정한 기교’이자 진정한 공교로움이다. 겉멋에 머무는 헛수고는 안 하느니만 못한 괜한 공교로움이다. 진정한 공교로움은 안정감이 한이 없고 기품이 끝이 없는 상태이다. 천 번의 유행과 만 번의 변덕을 뛰어넘어 내심으로 풍요로우니 편안하기 그지없는 상태이다. 잔 계산에 울고 웃는 거침을 초월한 상태이다. 그 실현이 바로 심미와 예술의 최고 경지이니 이것에 이른 상태를 자연천성(自然天成) 혹은 교탈천공(巧奪天工)이라 했다. 완벽한 자기다움에 이르러 기교를 탈피한 경계로 하늘이 만든 상태와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어진 경계이다.
진정한 공교로움의 반대편에 부질없는 공교로움이 있다. 외관의 반짝거림에 취해 겉멋이 들어 쓸데없는 잔재주를 부리는 수준으로 대교약졸이라 했다. ‘큰 기교는 서툰 것과 같다’는 뜻이니 진실성이 빠진 상태이다. 기예를 ‘욕심을 일으켜 감각의 탐욕을 키우는 잔재주’로 파악하는 수준이다.
만든 물건에서 진실성이 느껴지면 곧 정심의 경계이니,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된 경지로서의 물아일체의 상태이다. 장인은 뒤로 빠지고 재료와 부재가 각자의 본성과 쓰임새에 맞게 스스로 만들어지라고 놔뒀을 때 나타날 법한 상태를 구현해낸 경지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재료와 부재를 대상으로 보지 말고 그것들에 나를 온전히 실어 완벽한 감정이입의 상태에 들어야 한다.
굳이 공교롭게 잔재주를 부릴 필요 없이 ‘몰아(沒我)’의 경지에 이르니, 곧 ‘물아일체(物我一體)’이다. 건축에서 기예가 발현되는 통로는 공예, 소품, 문양 셋이다. 소품은 생활의 미학이며 일상성, 살림살이, 농기구, 돌의 해학성에서 찾을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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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고택너무 휘어서 버려야 할 나무를 아치로 썼다. 재료의 형상에 내재된 쓰임새의 잠재력을 파악하는 힘이니, 진정한 공예의 출발점이다. 손재주가 아닌 손맛이어야 하는데, 재료의 제격을 파악해내는 힘이다. | |

-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출처]네이버캐스트 :: 오늘의 집 > 한옥미학 201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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