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학【美學】
<한옥미학 18> 한옥의 과학다움
by 禱憲
2010. 8. 1.
기계론적 효율로 보면 불편하고 재래적인 한옥
한옥은 비과학적일까. 한옥은 불편하기만 한 것일까. ‘재래’, 말 그대로 있던 것이 계속 있다는 뜻이다. 재래다운 것은 전부 비과학적이고 따라서 폐기되어야만 할까.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비교대상이 있어야 한다. 제일 좋은 비교대상은 ‘지금, 이 시점’이다. | |
현재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절대적으로 기계론에 의존하고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해야 하고 논리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이 100% 완벽해야 하며 무엇보다 낭비 없는 효율의 절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람의 육안을 뛰어넘는 우주나 나노 같은 극대, 극소 스케일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것은 기계밖에 없다는 믿음을 공고하게 바탕에 깔고 있다. 압축하면 효율과 기계론, 즉 기계론적 효율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옥은 정말 비과학적이다. 이런 기준만이 사람에게 복지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한옥은 민속촌 밖으로 한 걸음도 나와서는 안 된다. 겨울에 춥고 삐걱거리며 집은 짓다 만 것 같아서 여기도 기우뚱 저기도 기우뚱 거린다. 창호지는 왜 그렇게 옆방 목소리를 생생하게 생중계하는지 귀가, 아니 숫제 온 신경이 곤두선다. 바람만 조금 불어도 온 집이 부르르 떠는 것 같아서 그 속에 들어있는 사람까지 당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바닥을 봐도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잔 변화는 왜 또 그렇게 심한지 마당에서 방에 오르려면 약식 등산이라도 하는 것 같다. 맨몸으로 해도 힘든 이런 성가심을 무거운 밥상을 들고 평생을 해대야 하니 한옥은 정말로 ‘여자를 죽이는 집’인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부정적 의미로 ‘재래’를 말할 때 해당되는 내용들이다. 서양에서 먼저 시작된 근대기계문명, 그리고 우리도 해방 이후 반세기 이상 이루기 위해서 미친 듯이 일했던 그 근대기계문명이란 것도 사실 좁게 보면 이런 재래다운 불편함을 없애고 좀 더 편리하고 위생적인 살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히 근대화에서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전 국민의 70%가 아주 튼튼하고 안전하게 지은 쾌적한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다. 이제 적어도 집과 관련해서 비바람에 집이 날아갈지, 겨울에 추울지, 여름에 더울지, 내가 방에서 전화로 속삭이는 얘기를 엄마가 들을지, 내 무릎 연골이 닳지는 않을지 등등을 고민할 필요는 정말 없어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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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정 사랑채 대개, 바람 길에는 해도 잘 들게 마련이다. 해가 드나들고 바람이 다니는 길은 풍경도 좋은 법이다. | |
경험적이고 정성적(定性的)인 과학다움에서 뛰어난 한옥
그런데 사람들은 계속 난리다. 이렇게 훌륭한 근대화를 이루었고 그 열매도 분명히 손에 넣었는데 새로운 불만은 끊임없이 제기된다. 사회현상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세계에서 유래 없이 빠른 1등 근대화를 이루었더니 별의별 희귀한 사회적 정신적 불안 증세에서도 여지없이 1등을 차지하고 있다. 다 아는 얘기이고 입에 올리기 민망하니 구체적 언급은 피하자. 다만 한 가지, 온 국민이 남녀노소 구별 없이 온갖 종류의 중독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직시해야 한다.
왜 그럴까. ‘과학적’이라는 것의 기준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빼먹었기 때문이다. 과학적이라는 것에는 기계론적 효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각과 감성, 정서와 체화, 마음과 심리 등과 같은 경험적 정성적(定性的) 요소가 절반은 차지한다. 정량적 요소 반에 정성적 요소가 반을 이루어 균형이 잡힐 때 비로소 진정한 과학다움이 실현되는 것이다. 경험적이고 정성적 요소가 빠진 기계론적 효울 중심의 정량적 과학다움은 손에 물질은 많이 쥐어줄지 모르지만 그 반대급부도 반드시 묻게 되어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어려움이 그 증거이다. 경험적이고 정성적 요소가 없을 경우, 물질적 과학다움에는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나 건강한 과학다움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이렇게 찬란한 업적을 이룬 현대과학문명도 한 가지를 손에 넣으면 반드시 반대급부가 따른다는 케케묵은 만고의 진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 |
의성김씨 종가 무심한 나무 한 토막과 덤덤한 돌 한 덩어리는 집안에 재래다운 포근함을 더해준다. |
우리가 재래적이라고 부르며 극복하고 없애고 싶어 했던 한옥의 비과학다움이 이런 경험적이고 정성적 요소의 좋은 예이다. 이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본 것 자체가 사실은 잘못된 것이다. 물질적 기준에서 보면 비과학적이지만 경험과 정성의 기준에서 보면 오히려 과학적일 수 있다는 역설이 숨어 있다. 한옥을 건강한 주거형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앞에 늘어놓은 한옥의 불편함이 거꾸로 과학다움과 건강함으로 뒤바뀐다. 예를 들어보자. 한옥의 참맛은 햇빛과 바람을 온전히 맞아 즐길 수 있을 때 제대로 알 수 있다. 낯선 전문용어로 설명하는 대청 지붕의 구조나 어려운 동양철학에 견주어 설명하는 공간의 원리 등을 알지 못해도 한옥은 경험만으로도 그 가치와 이로움을 부족함 없이 느낄 수 있다.
햇빛과 바람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한옥의 참 의미를 알 수 있다
햇빛 한 줄기와 바람 한 줌을 고마워할 줄 아는 정신자세와 그것을 살갗과 땀구멍과 신경과 핏줄을 이용해서, 온몸으로 체화해서 즐길 수 있는 몸만 있으면 족하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이런 생리작용을 마음과 정신으로 연결해서 균형 잡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섬세한 감각이 필수적이다. 무지막지하게 효율적인 기계문명의 도움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한옥이 주는 경험적 건강함은 별 쓸모가 없어 보일 것이다. 소소하고 나약한 자연요소에 크게 감동받고 고마워할 줄 아는 섬세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한옥의 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한옥의 참 의미는 한겨울 따뜻한 햇빛을 만끽하며 삭풍이 두렵지 않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또한 한여름 폭염을 저 멀리 하늘에 붙들어두고 허파까지 시원하게 흩어내는 통(統) 바람과 통(通) 바람을 즐길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햇빛과 바람은 결국 같이 작동하는 것일진대, 한옥이란 겨울에는 햇빛을, 여름에는 바람을 붙잡아 끌어들이기에 가장 적합한 구조를 하고 있다. 햇빛을 알뜰살뜰 주어 옷 속 깊숙이 담고 피부 구석구석 바를 수 있을 때, 그리해서 햇빛을 말초신경 끝마디까지 짜릿하게 느끼고 모세혈관 끝 가닥까지 가득 채울 수 있을 때, 따라서 햇빛을 통해 나의 존재를 여실히 깨달을 때, 그러할 때 한옥의 참맛을 비로소 알았다 할 수 있다. 또한 한여름 죽부인 끼고 대청에 속옷 바람으로 뒹굴 거리며 수박 까먹으며 시원한 바람을 느낄 때 한옥의 참맛의 나머지 반을 알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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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고택 안채 안채의 광은 바람과 햇빛이 함께 다니기 에 좋은 구조를 갖춘다. 통하고 소독하는 재래다운 위생이다. |
창덕궁 연경당 오르내림이 많은 한옥의 기단 구조는 몸을 많이 쓰게 만들어 준다. 이것을 불편하지 않게 느낄 수 있으면 기계가 줄 수 없는 건강한 과학다움을 체험하게 된다. |
정리해보자. 재래적 불편함이 과학다운 건강함이 될 수 있는 경로는 세 가지이다. 첫째, 한옥의 불편함은 자잘한 생리적 자극을 유발한다. 몸을 많이 쓰게 만들기 때문에 일정한 운동량을 담보해준다. 둘째, 이것이 감각과 감성을 지속적으로 자극한다. 자잘한 일상생활을 즐기면서 갖는 운동효과는 일부러 헬스클럽에 가서 하는 운동처럼 오로지 육체에만 집중된 운동에서는 얻지 못하는 묘한 쾌감이 있다. 장수노인이나 고승들이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방을 손수 청소하고 자신이 입었던 옷을 손빨래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좋은 예이다. 셋째, 생리적 우회 없이 처음부터 마음과 정서를 도닥여준다. 한옥은 매우 감각적인 집이다. 사람의 오감을 섬세하게 쓰다듬고 부드럽게 자극한다. 이것을 오로지 감각 자체에 집착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을 끌어들여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연의 도움으로 하기 때문에 그 효과는 오래 지속된다. 모두 현대의학에 한계를 느끼고 그 대안을 다른 곳에서 찾는 대체의학이 주목하는 내용들이다.
한옥이 과학적일 수 있는 이유는 이상의 세 가지 특징이 종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셋 가운데 한 가지만 만들어내기는 쉽다. 그러나 집 하나에 셋 모두를 담아서 더욱이 그것들이 상호 연관을 가지며 종합적으로 작용하게 만들기는 정말로 쉽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지극한 과학적 우수성이다.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변수들을 기계 하나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과학이기보다는 폭력이다. 최소한의 존재근거를 주자면, 물질의 축적이 시급했던 성기 산업자본주의 때의 미덕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일반인은 일반인대로, 과학자는 과학자대로, 장사꾼은 또 장사꾼대로, 인문학자나 예술가들도 역시 그들대로, 복잡 미묘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다양한 조건들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서는 한옥처럼 경험과 정성을 종합적으로 구사하는 집이 과학적인 집이 되는 것이다. | |
-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출처]네이버캐스트 :: 오늘의 집 > 한옥미학 2010.06.10.
http://navercast.naver.com/home/koreanstyle/2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