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되, 집의 창문을 액자처럼 활용해서 쉼 없이 변하는 풍경화 수십 장, 수백 장을 집안 곳곳에 걸어놓고 즐긴 것이다. 서양의 귀족도 예술사상을 중요한 통치 기반으로 삼았다지만 이렇게까지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공부만으로는 안 되는 법, 타고난 기질과 직관적 감성, 그리고 국민성 등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한국의 국민성은 자잘한 놀이를 좋아하고 다양성을 즐기는 상대주의가 강하다. 나의 바깥에 있는 객체나 자연과 동등한 입장에서 마음을 주고받고 감성을 교류하려는 인생관을 가졌다.
풍류에는 난초 정도는 칠 줄 알아야 무릇 양반이라 할 수 있는 예술적 감성도 들어 있었고, 자연과 하나 되어 어깨를 들썩일 수 있는 정신적 여유도 들어 있었다. 이같은 여러 배경들이 합해져 집을 풍류를 즐길 수 있는 하나의 큰 놀이터로 파악하고 그 가능성을 극대화해 집 곳곳에 심었다. 직접적 풍류는 물론 계곡 속 정자에서 벌일 일이지만, 일상생활 자체를 하나의 풍류로 보았고 집을 그 놀이터로 삼은 것이다.
풍경작용을 기준으로 보면 한옥은 참으로 감각적인 집이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를 온전히 놔두지 않고 감각적으로 즐기기에 제일 좋은 방식으로 창속에 담는다. 굴뚝 하나 건넌방 문 하나도 마찬가지이다. 담과 문, 장독과 댓돌, 기와와 문살, 기둥과 서까래, 눈과 신록, 낙엽과 단풍, 심지어 먼 산과 하늘과 햇빛까지 담을 수 있는 건 모두 담아 즐겼다. 즐기는 방식도 다양하다. 활짝 열어젖히며, 코앞에서 대면하듯, 손을 뻗쳐 애무하듯, 옆으로 삐딱하게, 숨어서 관음하듯, 낮은 목소리로 속마음을 트듯, 마주보며 호탕하게 웃듯, 어미가 자식을 품에 안듯, 반가운 친구와 악수하듯 끝이 없다. 뭉툭 그려, 우리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관계를 그대로 풍경작용에 옮겨 놓았다. 내 몸이 생활하는 감성의 흐름과 감각의 궤적을 집에 실어서 자연스럽게 집과 하나가 될 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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