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학【美學】
<한옥미학 4> 풍경작용
by 禱憲
2010. 8. 1.
‘풍경작용’은 한옥이 주변과 어울리는 구체적 전략이다
집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 속에 들어있다. 집이 ‘나’라면 주변은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이다. 내가 이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듯 집도 주변과 ‘관계 맺기’를 해야 된다. 풍경작용은 집이 주변과 관계를 맺게 해주는 직접적 통로이다. 집이 주변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살가움을 보여준다. 주변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친화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친해지는 구체적 전략이자 이를 구현하는 건축적 기법이다. 집은 풍경작용이라는 매우 우아하고 문화적이면서 예술적인 방식을 통해 주변과 소통하고 한몸으로 작동한다. 한옥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한옥을 집만 봐서는 안 된다. 주변과 일심동체이기 때문에 주변과 함께 봐야 하는데 풍경작용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풍경작용이란 무엇인가. 집이 창을 통해 주변을 하나의 풍경화처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창은 액자를 이루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이는 창의 본래 기능에 가장 충실한 작용이기도 하다. | |
본래 창이란 ‘안과 밖을 소통시키고 이어주기 위해 건물 벽에 뚫은 구멍’이니 풍경작용은 여기에 ‘딱’이다. 소통에는 말도 있고 얼굴 보여주기도 있고 바람 들이기도 있는데, 풍경작용도 중요한 요소이다. 집 밖의 상황을 하나의 경치로 만든 다음, 이것을 그림 그리듯 창 속에 한 폭의 풍경화로 집어넣고 감상하는 방식이니, 창을 통해 주변과 소통하는 방식치고는 참으로 고상하기 이를 데 없다 하겠다.
풍경작용을 보면 한옥이 주변을 얼마나 소중하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주체인 내가 객체인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서 친하게 어울린다는 뜻이니, 유교의 핵심적 가치인 어울림의 미학을 집에 실어낸 좋은 예이다. 유교문명의 대표적 주거형식인 한옥이 자기 시대의 가치관을 구현해낸 예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가치를 불이사상으로 더 강하게 추천한다. 세상의 분별심과 편 가름은 모두 내 아집과 탐욕에서 비롯된 부질없는 허망이니 본래 너와 나도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한옥은 ‘나쁜’ 집이 아니라 ‘좋은’ 집이다. ‘나쁘다’는 ‘나뿐이다’에서 온 말이고 ‘좋다’는 ‘조화롭다’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밀접한 한 쌍을 상징하는 관계가 많다. 음양의 조화는 우주의 이치이니 사이 좋은 남녀 관계가 그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다. 부부는 그 최고봉이니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부부관계만 좋으면 거뜬히 살아낼 수 있다. 집과 주변도 밀접한 한 쌍이 될 수 있는, 되어야만 하는 관계이다.
사람이 밖과 단절된 집 안에만 살다 보면 감성은 황폐해지고 고집만 늘고 나만 알게 된다. ‘나뿐’인 ‘나쁜’ 사람이 되어간다. 집과 주변은 음양의 관계이니 둘이 화합하면 만사가 형통하고 기가 잘 돌아가서 마음이 건강해진다. 한옥은 금술 좋은 부부가 서로를 아끼고 보듬듯 끊임없이 주변에 관심을 쏟고 집중해서 집의 지평을 넓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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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광풍각 한옥의 창에 담기는 풍경은 바람소리도 나고 풀냄새 도 나는 오감작용의 대상이다. | |
풍경작용을 즐기는 일은 한옥이 주는 큰 은혜이다
권위 있는 한옥은 마당에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그냥 심지 않는다. 반대로 방 안에서 보면 창이나 문을 낼 때 아무 곳에나 내지 않는다. 둘이 함께 어울려 풍경화 한 폭을 그릴 수 있는 위치에 나무를 심고 창을 낸다. 모든 창과 모든 나무가 이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중요한 포인트에 대해서는 분명히 이렇게 한다. 따라서 품격 있는 한옥을 구별해내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집 안의 중요한 포인트에 풍경작용을 실어냈는지의 여부이다. 무심코 문을 열었는데 눈앞에 갑자기 찬란한 풍경화 한 폭이 펼쳐진다면 일단 화들짝 놀라며 반가워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심호흡과 함께 천천히, 즐거운 마음으로 실컷 감상할 것이며 감상료로 그 집의 품격과 권위를 찬사하면 된다. 풍경작용의 참뜻을 알고 그곳에 심고 그곳에 낸 것이니 집을 지은 장인의 안목과 그것을 지휘한 집 주인의 안목과 감성이 보통을 훌쩍 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집에 한평생 살면서 그것을 즐겼다는 말이니 그 집살이가 얼마나 신나고 감성적이고 즐겁고 고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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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고택 한옥의 창은 그냥 낸 것이 아니다.보기좋은 풍경을 담으려는 고민의 결과이다. |
한규설 대감가 나무 한 그루를 심어도 창과의 대응 관계를 생각한다. |
나무 한 그루뿐 아니다. 한옥은 여러 채로 구성되고 꺾임이 많고 마당도 여럿이라 채와 채가 서로 대면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창이 그려내는 풍경화 속에는 내 집의 다른 부분이 들어갈 수도 있고, 마당의 넉넉함이 담길 수도 있다. 담 너머 먼 산이 여유를 부릴 수도 있고 수 십 개 장독대가 도열할 수도 있으며 굴뚝 하나가 선명하게 박힐 수도 있다. 집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올 수도 있고 건넌방 자식 놈 방문 하나로 꽉 채울 수도 있다. 모두 창이 풍경작용을 통해 주변을 담아내고 주변과 소통하고 주변을 안아주는 다양한 내용들이다.
집 안에 수십 장의 풍경화를 장르별로 다양하게 걸어놓은 셈이니 한옥이 왜 좋은 집인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다. 한옥을 짓고 살았던 조선 선비의 문화적 안목과 예술적 감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나무라도 한 그루 들어있으면 이놈이 계절 따라 잎이 나고 무성해졌다가 단풍이 지고 나목으로 벌거벗는 변신이 그대로 풍경화의 다양한 종류가 된다. 창 하나에서 이렇게 다양한 풍경화를 그려내니 집안 전체는 하나의 큰 미술관이 된다. 그것도 액자 속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자연 미술관이다. 기막힌 심미적 전략이요, 은혜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집권 지배계층은 세계관을 형성하는 거시적 안목에서 하루하루 벌어지는 미시적 통치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안목을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예술을 알아야 세상 이치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고, 그런 다음에야 나랏일을 경영하고 정적과 맞서 정책을 수립하고 국민을 다스릴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난 치고 풍류를 즐기는 일이 겉으로 드러난 경우인데, 한옥의 풍경작용은 숨어있는 그런 예술적 안목의 진수이다.
풍경작용은 최고의 놀이이다
한옥은 변화무쌍하다. 한시도 같은 모습으로 있질 못한다. 한옥을 겉으로만 한 바퀴 돌며 보아 넘기면 무거운 지붕을 머리에 이고 무뚝뚝한 사내처럼 굳어져 있는 것으로 느끼기 십상이다. 정반대이다. 재기 발랄하고 방정맞고 요동치듯 수시로 변한다. 집안에 들어가서 수많은 창을 직접 열었다 닫아보면 안다. 풍경작용은 그 핵심에 있다.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외적 형식이 집의 골격과 창의 다양성이라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 풍경작용이다. 한옥에 창이 많고 위치와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인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성과 변화무쌍함을 확실한 목표로 삼아 치밀하게 짠 정교한 유기체 같다. | |
김동수고택 창을 통한 다양한 풍경작용은 집을 하나의 놀이터로 만든다. |
다양성과 변화무쌍함은 한옥을 하나의 큰 장난감으로 만든다. 그 자체가 하나의 놀이터이다. 한옥을 반가의 딱딱한 권력과 동의어로 보면 한없이 근엄하고 거리감이 느껴지고 무섭기까지 하지만 실은 즐거운 놀이기능을 갖춘 요술집이다. 풍경작용은 그 핵심에 있다. 이 자체가 즐거운 놀이기능을 갖는다. 지금처럼 감각적 놀이문화가 없던 시절, 집에서 즐길 수 있는 풍경작용은 분명 큰 놀이기능을 가졌을 것이다. 풍경놀이에서 느껴지는 풍성한 감성작용이 좋은 증거이다. 거꾸로, 요즘 집은 이런 놀이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집밖에서 놀이를 찾고 결국 유흥 퇴폐문화로 이어진다.
풍경작용이 갖는 놀이기능은 집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상호작용을 늘려 둘 사이를 친하게 만든다. 한옥이 체험적이고 감각적인 이유이다. 풍경작용은 오감 가운데 시각으로 시작한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다름 감각과 협동 작업을 펼친다. 액자 속 풍경이 살아있는 실체라서 오감으로 교류할 수 있다. 부엌 풍경이라면 밥하는 냄새가 날 것이고 꽃 풍경이라면 향기가 날 것이다. 건넌방 자식놈 방이라면 애들 웃음소리가 피어날 것이다. 나무라면 바람소리를 방 안까지 들려줄 것이다. 바람은 계절의 냄새를 실어주고 땀을 식혀준다. 풍경화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격이다. 마당 가득 들어온 햇빛은 풍경을 찬란하게 만들 뿐 아니라 방 안까지 파고들어 사람의 몸과 피부와 부드럽게 교감한다. 풍경작용은 이렇게 오감과 어울리며 온몸의 감각을 희열로 곤두세운다. 마음 가득 흠뻑 흥이 잔뜩 오른다. 기막힌 놀이이다. | |
-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출처]네이버캐스트 :: 오늘의 집 > 한옥미학 2010.03.15.
http://navercast.naver.com/home/koreanstyle/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