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학【美學】
<한옥미학 27> 마당과 댓돌
by 禱憲
2010. 8. 1.
한옥의 주인은 집이 아니라 마당이다
마당 없는 한옥은 생각할 수 없다. 마당 없는 한옥은 한옥이 아니라 그냥 각 나라마다 한 종류 이상씩은 다 있는 ‘나무집’일 뿐이다. 면적으로 보아도 ‘아흔아홉 칸’ 대감댁이라지만 집이 차지하는 건평은 그 절반을 넘지 못한다. 공간 골격은 단순하고 소박한 편이어서 ‘초가 삼 칸’을 씨앗으로 삼아 증식, 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당은 단순하고 소박한 공간이 서로 어울려 더없이 풍부하고 복합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해주는 바탕이다. 때로는 넉넉하게 다 품어주고, 때로는 오밀조밀하게 나눠주면서 집 전체에 숨통을 터주기도 하고 숨통을 조이기도 한다. 마당은 공간의 안팎을 굳이 구별하지 않으려던 불이 사상이 구현되는 통로이다. 마당이 있기에 대청이 살고 퇴가 산다. 대청, 퇴, 누 같은 전이공간을 만들어낸다. | |
해풍부원군 윤택영댁 안채 안채의 서쪽 동이 제 앞까지만 치마폭처럼 그림자를 내리는 것도 빈 마당을 통해서이다. 건너편 땅은 내 것이 아니니 내 땅까지만 영역을 짓는다. 그것도 석양이 도와 그림자를 통해서 하니 내일 아침이면 부질없는 땅 나누기도 지워진다. |
한옥의 마당에서는 스케일의 미학을 느껴야 한다. 도시형 한옥의 마당은 대개 5~15미터, 시골의 정통 한옥은 7~25미터 정도이다. 이 수치는 채와 채가 같은 영역 안에 있다는 울타리 의식을 느끼게 하는 데 적합한 스케일이다. | |
채가 이러니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간접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준다. 건물 높이와의 비율은 대부분 1~2.5 사이에 들어온다. 조금 타이트하게 느끼는 범위에서 편안한 에워쌈을 느끼게 해주는 범위 사이에 든다. 사랑채 앞마당은 트이면서도 일정한 에워쌈을 느끼고 안채 안마당은 다소 조이는 느낌이 든다.
한옥의 마당은 비어있다. 비워야 진정한 쓸모가 생긴다는 노장 사상의 가르침을 좇았다. 채가 꺾이고 분화하면서 여러 겹으로 나누어지는 공간의 켜 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빈 마당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마당은 비어있는 것 같지만 채울 때도 있다. 물질로 채우지 않고 무형으로 채운다. 지붕 추녀를 하늘로 활짝 들어 울리는 것도 마당이 비었기 때문이다. 곡선의 리듬감으로 채운다. 거꾸로 이것을 그림자로 만들어 땅 위에 내려놓는 것도 빈 마당이 할 일이다.
댓돌은 빈 마당과 잘 어울린다. 형상부터 그렇다. 마당의 형상이 짜임새 있는 것 같으면서 어딘가 헐거워 편안한 느낌을 주듯이 댓돌도 그렇다. 반듯한 육면체를 유지하면서 돌의 안정감을 빼앗지 않지만 다듬다 만 듯 어딘가 엉성하다. 댓돌은 한국다운 떡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잔 계단 여럿으로 나눌 법한데 큰 덩어리 하나만 덩그러니 놓았다. 딱딱한 고형체인 돌을 해학적으로 받아들이는 한국다운 조형의식의 좋은 예이다.
은진미륵이 그러하며 절 앞의 돌탑이 그러하다. 돌에 감성을 싣고 친근한 요소로 만든다. 돌은 물성이 너무 강해서 물욕과 인공성을 실을 경우 폭력적이 되기 십상인데, 일상 생활공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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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고택 댓돌은 한국 특유의 떡의 미학, 떡의 정서를 그대로 닮은 것이려니와,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은 한국다운 정의 문화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떡 덩어리 하나 들고 떼어 나눠먹는 모습과 동의어이다. | |
-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
[출처]네이버캐스트 :: 오늘의 집 > 한옥미학 2010.07.12.
http://navercast.naver.com/home/koreanstyle/3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