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시대의 비전
이 글은 노무현 대통령이 각종 연설과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시대의 비전’과 관련된 발언을 논리적 체계에 따라 재정리한 것입니다.
* 주요 출처 : 군 주요 지휘관과의 대화(06.6.16), 민주평통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06.12.21), 제13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 연설, 동아시아재단 글로벌아시아 특별기고, 취임 4주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화, 노무현대통령 신년연설, 제4회 제주평화포럼 개막식 기조연설, 참여정부평가포럼 월례강연, 한겨레신문 특별인터뷰 등
1.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전략
1-1. 대북정책
o 평화를 위해서는 신뢰와 포용이 핵심
o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 평화와 안전
o 상호주의보다는 실용주의로
o 평화 전략의 핵심은 공존의 지혜
o 포용정책은 공존과 화해라는 세계사의 흐름과 일치
o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조용한 안보
1-2. 한미관계
o 일방적 의존관계에서 21세기형 호혜적 상호관계로
o 전시작전권 전환은 동맹 조정의 핵심
o 자주국방의 자신감 있어야 대등한 외교 가능
o 이라크 파병, 가장 적은 비용으로 한미동맹 신뢰 확인
1-3. 균형외교
o 경제·안보 고려한 실용주의 외교
o 지향하는 가치와 현실의 조화
o 멀리 보는 안보외교, 미래의 동북아 질서를 향하다.
o 북핵 해법 넘어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로
2.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비전
2-1. 동북아시대의 구상
o 동북아시대 구상은 선진한국의 방향타
o 안보 협력체에서 동북아 경제공동체로 발전해 가야
2-2. 동북아시대,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
o 협력과 통합의 제도화로 동북아공동체 건설
o 동북아 대결구도,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o 다자안보협력 체제 구축
o 경제 협력과 통합의 새 질서 확립
o 미국 참여, 동북아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것
o 역사인식에 대한 공통의 토대 마련해야
o EU로부터 배우자
3. 남북공조 통한 북방경제시대 열자
3-1. 북핵문제가 풀리고 있다
o 북핵문제 해결은 평화주의 전략의 승리 입증
o 포용정책의 승리
o 북핵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전반에 걸친 문제
o 한반도 평화 정착은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의 첫 관문
3-2. 미래전략
o 동북아시대 비전은 핵심적 미래 전략
o 세계 일류국가로 웅비하는 꿈
1.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전략
1-1. 대북정책
평화를 위해서는 신뢰와 포용이 핵심
우리 한국은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오랫동안 대치해 왔고 지금도 대치 상태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안정됐고, 또 안정시켰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아직까지 어떤 충돌의 위험에 대비하며 국가를 운영해 가고 있습니다.
만에 하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전쟁에는 이기더라도 민족의 재앙이 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합니다. 극단적이고 선동적인 주장보다는 안보를 튼튼히 유지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에 우리 국민 대다수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허용할 수 없습니다.
평화를 위한 전략의 핵심은 공존의 지혜이고, 이를 위해서는 신뢰와 포용이 필수적입니다. 믿지 못하면 대화할 수 없고, 대화하지 않고는 통합을 향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상대를 신뢰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한 신뢰받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상대를 존중해서 하고, 작은 약속 하나라도 반드시 실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북핵문제를 풀어 나가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가운데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하되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일관된 원칙을 확고히 견지했습니다.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창조적 대안을 제시하고 인내심을 가지면서 참가국들을 설득하고 중재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한반도 평화는 우리 국가이익을 위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 평화와 안전
남북관계에서 확고한 원칙과 우선순위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입니다. 통일은 그 다음입니다. 통일을 위해 평화를 깨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상의 안보입니다.
참여정부는 이러한 원칙 아래 평화와 안정을 지키고 증진시켜 왔습니다. 북핵 문제에 관해서 대화에 의한 해결 원칙을 그야말로 뚝심 있게 관철해온 결과 이제는 확실하게 대화의 길로 나가고 있습니다. 쌍방이 모두 대화의 길로 들어서서 성의를 다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안보의 핵심 개념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안보의 목적이고 평화도 안보의 목적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안보는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적 활동을 의미합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전쟁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안보보다는 평화를 지향하는 안보라는 개념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화를 지향하는 안보를 해야 합니다. 안보를 위해서 끊임없이 대결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상대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적대적 감정이 들어가고 불신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전쟁이나 힘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대화로써 해야 합니다. 대화의 전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존중입니다.
주먹을 꺼내기 전에 말로 먼저 해결하는 것이 대화를 통한 안보입니다. 참여정부는 여러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일관되게 이 원칙을 견지했고, 그 결과 남북 간 신뢰가 많이 증진됐다고 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내하고 양보하고 절제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상호주의보다는 실용주의로
한 마디 나쁜 소리 들으면 두 마디 쏘아 주고, 또 세 마디 돌려받고 네 마디 쏘아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상호주의라고 합니다. 대립과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방식의 대응입니다.
이전의 대북정책은 대체로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것이었습니다. 상호주의는 형식적이고 경직된 원칙이 될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조건과 서로의 처지가 너무 다르고 생각도 다릅니다. 누군가가 나의 뺨을 한 대 치면 곧바로 받아서 치는 것이 속도 시원하고 옳을 것 같지만, 남북관계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참여정부는 이 상호주의에 대응하여 실용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변화된 남북관계의 흐름과 한반도 평화 번영을 위한 시대적 요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인 평화와 신뢰구축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놓고 그때그때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무조건 상호주의라는 원칙에 묶어두면 안 됩니다.
이 같은 참여정부의 원칙을 두고 일방적인 퍼주기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남북관계의 장기적인 목표를 놓고 상대방의 신뢰를 확보하고 결국은 남북 간에 대화로 보다 큰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유익한가를 판단해야 합니다.
평화 전략의 핵심은 공존의 지혜
평화를 위한 전략의 핵심은 공존의 지혜입니다. 화해와 협력, 공존을 위한 지혜의 요체는 신뢰와 포용입니다. 끊임없이 상대를 적대하고, 의심하고, 상대의 허물을 들추어 자존심과 불안을 자극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고 자존심을 세우려고 해서는 신뢰를 쌓을 수도 없고, 화해와 협력의 대화를 이어갈 수도 없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대범한 자세로 상대를 포용해야 합니다. 대결주의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온갖 극단적인 상황만을 가정하여 불신과 적대감을 자극하는 것보다 혹시라도 오해가 생기고 싸움이 벌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하는 것이 신뢰를 쌓는 길입니다.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요인 관리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대북지원을 놓고 시비가 많았습니다. 대북지원의 문제는 1차적으로 평화의 비용으로, 2차적으로는 통일의 비용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평화적으로, 그러면서도 관계를 진전시키는 방법은 신뢰밖에 없습니다. 내가 평화를 얘기해도 상대가 믿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믿도록 신뢰를 확보해 나가야 합니다. 상대가 확실하게 믿도록 신뢰를 확보해 나가야 하는 이 부분에서 대북 지원이 하나의 방식입니다.
핵심은 위기요인을 제거하는 것, 압력을 낮추는 것, 신뢰를 높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에게 안전에 대한 보장과 개방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신호를 계속 줘야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판단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느냐,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고, 교역하고 협력하고, 그렇게 해서 우호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느냐의 판단인 것입니다. 적어도 남북이 적대적 관계가 아닌 중국과 미국처럼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관계가 가능한가의 문제입니다.
거기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핵무기 버리고 개혁개방 쪽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쌍방적인 상호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이 확실하게 보장되고, 개방을 통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신호를 우리는 계속 주어야 하는 말입니다.
한국 정부는 일관되게 그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상황이 좀 나쁠 때도 그랬습니다. 북한에서 일시적으로 우리가 납득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3월이 되면 봄이 온다는 믿음으로, 세계 역사가 가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데에도 법칙이 있듯이 세계 역사도 그런 법칙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바야흐로 세계는 지금 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평화와 화해 협력의 시대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꽃샘바람이 불어도 우리는 흔들림 없이 가는 것입니다.
포용정책은 공존과 화해라는 세계사의 흐름과 일치
전체적으로 세계의 질서는 화해 협력의 방향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습니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역사 진보의 흐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비하지 않고 방심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에서 역사의 큰 흐름에 역행하는 우발적인 사건이나 불행한 사건을 감수해야 될 지도 모릅니다.
우리 한국은 이미 역량을 갖췄습니다. 올바른 전략만 선택하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올바른 전략을 선택하고 올바른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포용정책은 공존과 화해라는 세계사의 흐름과도 일치합니다. 저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조용한 안보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했을 때, 저는 되도록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조용한 안보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치적 정세, 안보적 정세는 장기적으로 총체적으로 서서히 변화해 가는 것이지, 그날 당장 전쟁이 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장래의 안보에는 영향을 미칠지언정 당장의 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비상도 걸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했습니다. 이런저런 부산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참모들의 걱정이 있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정치적인 이유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나쁜 관행의 고리를 끊고 싶었습니다. 결과는 물론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안보, 그렇게 요란스럽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한국의 안전을 지켜낼 만한 국력이 있고 군사력이 있습니다. 시끄럽게 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안보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안보를 내세워 국민들을 겁주고 불안하게 하는 것은 독재시대의 나쁜 버릇일 뿐입니다. 정치에서 국민의 불신과 적대감을 모으는 것만큼 수지맞는 수단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정치인은 성공하더라도 나라는 엄청난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그 동안 일부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겨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는 결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1-2. 한미관계
일방적 의존관계에서 21세기형 호혜적 상호관계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참여정부는 자주와 균형을 위한 한미동맹의 변화를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고 이해와 설득으로 꾸준히 이견을 조율하여 공조를 유지해 왔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러한 기조와 원칙은 계속 유지하고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진보진영의 주장처럼 미국과의 관계를 마른 나무 꺾듯 그렇게 했다면 남북문제도 지금과 같은 진전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참여정부 초기보다 한미관계는 훨씬 발전했으며 건강하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지위가 개선되고, 발언권이 커지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들어 한미 간의 신뢰도 깊어졌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할 말 하는 사람을 신뢰합니다. 책임지지 못할 일을 무조건 ‘예, 예’ 하면서 국민들에게 다른 소리하는 사람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을 신뢰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뢰가 있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한미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참여정부의 ‘지나친 자주성’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근거 없는 주장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면 딱합니다. 언제까지나 남에게 의존해서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물론 갈등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이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방위비 분담이나 용산기지 이전만 해도 비용, 시기를 놓고 의견이 조금씩 다르기 마련입니다. 큰 원칙에서 의견이 같더라도, 세부적인 사항에서는 서로의 이해관계상 다소 갈등이 있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갈등은 잘 풀면 됩니다.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과 갈등 소재들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갈등은 갈등이고, 관계는 관계대로 잘해 나가고 있습니다. 갈등을 제대로 조정해 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한미관계는 잘 조정되고 있습니다.
전시작전권 전환은 동맹 조정의 핵심
작전통제권은 20년 전부터 한나라당 정부가 공약하고 추진하던 것입니다. 당시 일부 보수언론들도 쌍수를 들어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하자고 하니까 돌변하여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정략적 행동입니다.
우리의 안보는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면서, 미국과의 관계에서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고, 손해도 안 보고, 자존심도 세우겠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태도입니다. 남의 나라 군대를 최전방에 배치해놓고 ‘인계철선’ 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주국가의 자세도 아니고 우방에 대한 도리도 아닙니다.
현실의 의존보다 심리적 의존이 더 큰 문제입니다. 미국이 없으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니 주한미군 철수라는 말만 나오면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정쟁이 생기고, 주한미군 사령관의 한 마디가 온 나라 언론을 장식하는 사태가 생기는 것입니다. 미 2사단의 후방 배치, 주한미군의 일부 감축을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작전통제권을 돌려받기로 한 것은 이러한 의존상태를 조금씩 줄여 나가자는 뜻입니다.
주도적인 작전통제권은 자주국가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지 체면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미래의 대북관계, 동북아 외교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한국군이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어야, 중국과 우리가 동북아시아의 안보문제를 놓고 대화를 할 때 그래도 한국의 발언권이 생기는 겁니다. 작전통제권도 없는 나라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또 북한에게는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외교상의 실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용산기지도 이전합니다. 오래 묵은 과제였습니다. 자주국가의 상징적인 측면에서 용산기지는 우리 국민들 가슴 속에 상당한 손상을 주고 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리 우방이라 할지라도 수도 한복판에, 그것도 하필이면 과거 청나라군대가 주둔했던 그 자리에 있어야 하겠느냐는 문제도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나라 독립협회가 모화관이 있던 자리를 헐어버리고 독립문을 세운 것은 그것이 역사적인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용산기지를 이전하고 작통권을 돌려받는 일의 명분은 자주국가의 당연한 권리행사이며, 또한 미국과의 동맹 조정의 핵심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자주국방의 자신감 있어야 대등한 외교 가능
대략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이후, 북한군과 비교한 방위력은 실질적으로 역전돼 한국군의 확고한 우위가 입증되어 왔습니다. 우리의 국방력과 경제력 역전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1985년 정도라고 잡아보더라도, 벌써 20년이 지난 일입니다.
그런데, 근 20년 간 북한의 몇 배에 달하는 국방비를 쓰고 있으면서 아직까지도 한국의 국방력이 북한보다 약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 동안 그 많은 돈을 쓰고도 북한보다 여전히 약하다면 국방부는 명백히 직무유기한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남북 간의 국방력을 비교하면 이제 2사단이 뒤로 나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혹자들은 주한미군의 존재를 두고 ‘공짜 비슷한 건데, 기왕에 있는 건데, 그냥 쓰지, 인계철선으로 놔두지 시끄럽게 옮기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에 대한 심리적 의존관계, 의존상태를 벗어야 합니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고 하는 의지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국방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주국가의 안보입니다. 인계철선이란 말 자체가 염치 없는 얘기입니다. 남의 나라 군대를 왜 우리 안보를 위한 인계철선으로 써야 합니까? 피를 흘려도 우리가 흘려야지요. 그런 각오로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과 대등한 외교가 가능합니다.
물론 완전하게 대등한 외교는 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초강대국입니다. 미국의 세계에 대한 영향력에 상응하는 대우는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를 거역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자주국가, 독립국가로서 체면은 유지해야 합니다.
이라크 파병, 가장 적은 비용으로 한미동맹 신뢰 확인
이라크 파병을 두고 논란이 많았습니다. 한반도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전쟁 가능성’과 ‘한미관계’입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문제는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요소입니다.
이라크 파병은 여전히 확고한 한미동맹의 가장 확실한 증명이 되는 사안이었습니다. 그것은 개인 노무현과 미국의 관계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미국의 우호관계, 동맹관계가 지속적으로 작동하느냐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였기 때문에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1만명 보내자는 사람, 오천명 보내자는 사람도 있었고, 전투병 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반대하는 사람들, 전쟁의 명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비전투병으로 3천명을 보냈습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한미동맹의 안전성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달성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했을 때,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1-3. 균형외교
경제·안보 고려한 실용주의 외교
제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우리 경제에 위기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미 외국자본이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 우선 외국 투자자들을 만났습니다. 물론 그들은 전쟁이나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장래에 더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이 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시에 발생하는 안보상황의 안보적 영향은 대부분 장래의 일입니다. 그러나 경제에는 당장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의 고려사항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정부의 경제와 안보를 고려한 실용주의 외교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지향하는 가치와 현실의 조화
외교는 현실입니다. 큰 틀의 원칙을 지키되 구체적인 외교행위는 융통성을 가져야 합니다. 외교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쌍방적인 행위입니다. 따질 것은 따지더라도 상대를 존중할 것은 존중해야 합니다.
또한 균형외교이든 자주국방이든 점진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기존의 관계를 갑자기 바꾸려고 하면 마음이 상하기 쉽습니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한미관계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외교관계를 옛날대로 가자고 하는 주장은 원칙에 맞지 않고, 일거에 바꾸자고 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참여정부는 정치와 역사에 관해서는 원칙주의를 견지해 왔고, 적당하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외교와 안보에서는 점진주의 내지 단계주의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국방 빨리 하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주국방 그거 늦게 하면 안 되느냐’ 얘기를 하지만, 제 입장은 적절한 속도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멀리 보는 안보외교, 미래의 동북아 질서를 향하다
참여정부의 평화정책은 멀리 보면서 가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이라는 현재의 좁은 틀이 아니라, 미·일·중·러 간의 관계 변화를 포함한 미래의 동북아 질서를 내다보면서 현재와 미래의 안보를 조화롭게 운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북핵문제 해결 이후에도 6자회담은 북핵문제를 푼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안보협력을 위한 다자간 협의체로 계속 발전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협의체는 군비경쟁 우려가 높은 동북아에서 군비를 통제하고 분쟁을 중재하는 항구적인 다자안보협력체로서 기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희망을 이미 9·19공동성명에 담아놓은 바 있습니다.
동북아시아가 한·일·북·중, 한·일·미, 북·중·러 이렇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되면, 그것은 우리의 미래에 대단한 불안 요소이고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동북아시아도 분열적 상황을 가급적이면 극복해야 합니다.
남북관계가 어려워지면 이 분열적 요소를, 더 분열되게 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잘못 관리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한반도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결국 남북 간의 협력과 통합은 북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 관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북핵 해법 넘어 동북아 다자안보체제로
2005년 9·19공동선언은 그야말로 참여정부의 작품입니다. 9·19선언 안에 동북아시아의 다자안보협의체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 개념은 참여정부가 6자회담, 북핵 이후의 동북아 질서를 미리 내다보고 당사국들을 설득해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9·19선언이 탄생하자마자 땅에 묻혀버렸지만, 봄이 오면 싹이 트듯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구축,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다자안보와 평화체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비전
2-1. 동북아시대의 구상
동북아시대 구상은 선진한국의 방향타
저는 200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참여민주주의’, ‘균형발전사회’와 함께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3대 국정목표의 하나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는 참여정부 외교정책의 기조를 이루어 왔습니다.
과거 역내 국가들 간에 반목과 대립, 그리고 갈등의 관계를 넘어서 협력과 통합의 새로운 지역 질서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동북아 공동체를 구현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또한 이 정책은 우리에게 생존과 번영을 담보하는 중차대한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4년 간 저는 동북아의 평화 정착을 위해 다자안보협력에 대한 구상을 제시한 바 있으며, 경제, 사회, 문화 부문에 대한 역내 협력방안들도 모색해온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 핵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되어 왔었고, 역사 문제를 둘러싼 역내 국가들 간의 불편한 관계도 평화번영정책의 구현에 장애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동북아시대 구상, 균형외교,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유연한 대응, 동북아 다자안보체제 등은 국가의 미래 발전전략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개념이며 성과입니다. 또한 이것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은 ‘친북 좌파정권’ ‘퍼주기’ ‘금강산·개성공단 중단하라’며 비난해 왔지만, 이제 역사적 현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대의 구상과 비전이야말로 선진한국을 향해 나아가는 정확한 전략이요 방향타였음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안보 협력체에서 동북아 경제공동체로 발전해 가야
동북아협력체제는 안보분야에만 머물러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물류·에너지 협력은 물론, 역내 자유무역, 통화금융협력으로까지 이어져 궁극적으로 동북아 경제공동체로 발전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전한 동북아시대, 평화공존체제를 열기 위해서는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2-2. 동북아시대,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
협력과 통합의 제도화로 동북아공동체 건설
동북아의 질서는 아직도 불안정합니다. 민족주의, 영토분쟁, 군비경쟁 등 과거의 망령들이 되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들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고도 파괴적인 과거 역사가 재현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바로 협력과 통합의 제도화를 통해 동북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당위가 있는 것입니다.
동북아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발전하더라도 EU와 같은 평화공존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면 ‘문명의 중심’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비전을 갖고 이를 지향해야 합니다.
동북아 국가들이 이제는 자국만의 이익, 소아(小我)의 울타리를 넘어서 공동 이해에 기초한 새 역사를 일구어 나가야 합니다. 유럽이 이미 반세기 전에 공동의 미래를 위한 목표를 세우고 씨앗을 뿌렸듯이, 동북아 국가들도 협력과 통합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갈등을 해소하고 미래 불안 요인을 극복해 나가는 동반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완결된 구도를 가지고 꾸려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자’고 마음먹고 가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신념을 가지고 가면 그것이 곧 길이 됩니다. 평화, 번영, 민주주의, 그리고 공동체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역사의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동북아에 EU와 같은 지역통합체가 실현되면 그야말로 새로운 역사가 열리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도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동북아 대결구도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동북아에는 지금도 제국주의와 냉전에서 비롯된 역사적, 이념적 앙금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잠재적 대결에 대한 미·일·중·러 간의 불신과 불안이 이대로 지속될 경우, 상호 간의 군비경쟁이 지속되고 더욱더 가속화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북아의 대결구도를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합니다. 동북아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발전하더라도 평화의 공동체를 구축하지 못하면 결코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없습니다. 자국만의 이익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상호존중과 협력에 의한 공존의 질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진해온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 구상의 핵심입니다.
다자안보협력 체제 구축
냉전시대 불신의 벽을 허물고 유럽통합의 기초를 닦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성공사례가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의 귀중한 교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럽의 안보협력 경험이 동북아에 그대로 적용되기에는 현실적 여건이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안보협력 경험에서 볼 때,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각국의 공동이해를 기초로 다자안보협력 구축에 대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적 리더십과 실천의지입니다.
또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은 상호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동북아의 기존 역내 안보질서 및 여타 안보체제와 상호보완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적 협력과 통합의 새 질서 확립
오늘날 동북아 핵심국가인 한·중·일 3국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급속히 심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떠한 형태의 역내 자유무역협정(FTA)도 체결하지 못한 제도적 통합의 변방지대로 남아 있습니다.
동북아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첨예한 경쟁관계를 완화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역내 분업질서를 모색하기 위해서도 보다 제도화된 협력과 통합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따라서 동북아 국가 간의 시장과 제도의 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통화금융, FTA, 에너지, 교통물류, 환경 등 다방면에서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미국 참여, 동북아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것
지역 공동체 구축을 위해서는 지리적 근접성 못지않게 그 지역에 대한 실제적 소속감이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동북아 지역에 대한 전통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강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동북아 다자협력질서와 구조를 창출하는 과정에 핵심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지역의 안정과 번영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인식에 대한 공통의 토대 마련해야
동북아의 미래를 위해 또 하나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한·중·일 간의 역사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역사문제를 대하는 일본의 인식과 자세가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여러 차례의 사과를 뒷받침하는 실천으로 다시는 과거와 같은 일을 반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지도자의 덕목은 과거를 직시하여 잘못된 과거를 밝히고 오늘의 교훈으로 삼는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 대한 왜곡은 반목과 불신의 악순환을 가져와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일본과의 과거사 정리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엄격한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진정한 화해는 역사적 진실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고, 역사에 대한 인식은 우리 미래, 우리 운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 없는 역사의 왜곡은 배타적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가져오고 나라와 지역을 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는 열린 민족주의를 가능케 하고 주변 국가들과 화합과 협력의 공감대를 만들어 줍니다.
2차대전 이후 독일의 과거사 청산과 철저한 반성은 유럽역사의 응어리를 풀어 유럽통합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구체적 성과로 나타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의 공동역사 교재는 새로운 세대에게 올바르고 통합된 역사인식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분열된 역사가 어떻게 통합의 미래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동북아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내 국가들 간의 공동역사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합니다. 이를 토대로 유럽의 사례처럼 공동의 역사교육이 이루어지면 특정 국가의 정체성이 아닌 동북아 지역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이를 위해 2006년 동북아역사재단을 설립하고 동아시아역사를 역사교육 과정의 하나로 채택했습니다. 이러한 공동역사교육은 동북아 정체성 형성을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역내 갈등의 근원이 되고 있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상호 신뢰와 이해를 도모하는 열린 민족주의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U로부터 배우자
유럽은 대결과 파멸의 과거 역사를 평화와 번영의 역사로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EU의 발전과정은 동북아지역의 미래에 많은 시사를 주고 있습니다.
근대 이후 유럽의 역사는 어떤 측면에서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까지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20세기 전반기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경험했습니다. 자민족 우월주의와 이기주의가 상호 간의 불신과 대립을 낳고 이것이 끊임없는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찍이 이성적 성찰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발명한 사람들답게 전쟁의 역사로부터 새로운 교훈을 얻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과거를 성찰할 줄 알고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와 공존의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럽통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모네, 유럽석탄철강공동체 창설을 제안한 슈망, 그리고 서유럽의 협력을 통해 유럽통합의 기초를 놓은 아데나워와 드골, 동서유럽의 화해를 이룬 브란트 등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19세기가 유럽의 시대였다면 20세기는 대서양의 시대, 그리고 21세기는 태평양 또는 동북아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경제적 생산력의 중심이 유럽에서 대서양, 그리고 동북아 지역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북아의 경제력이 가장 커진다고 해서 세계 문명의 중심이 동북아로 이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명의 요소에는 경제력도 있지만, 그 위에 과학기술력, 또 그 위에 공존의 지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가 국내적 차원에서 공존의 지혜라고 한다면, EU는 국제적 차원에서 최고 수준의 공존의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평화와 협력을 통해 공존의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는 EU는 여전히 세계 문명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3. 남북공조 통한 북방경제시대 열자
3-1. 북핵문제가 풀리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은 평화주의 전략의 승리 입증
제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 제2차 북핵 사태가 터지면서 동북아시아의 안보환경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긴박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중유공급 중단에, 북한이 봉인해제와 IAEA 사찰단 추방으로 맞서면서 무력제재 가능성까지 거론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목소리는 작년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을 계기로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참여정부는 그동안 상황을 침소봉대하지 않으면서 일관된 원칙에 따라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왔습니다. 평화주의 노선의 원칙을 확고히 세우고, 국내 정치적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인내로써 적대적 행위를 절제하고, 대화와 설득으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북한 핵시설의 폐쇄와 봉인이 시작됐습니다. 아직은 완전히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만, 그러나 이제 중유공급이 시작됐고 IAEA 사찰단 활동이 재개됐기 때문에 계속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13합의 이후 우여곡절도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절제하면서 노력해 온 결과, 이제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보다 확실한 전망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쉬움도 있습니다. BDA 문제가 아니었더라면 북핵문제는 9·19공동성명 이후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을 터인데, 지난 시간이 참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전후의 그 긴박했던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정도의 전망을 갖게 된 것만 해도 정말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북핵문제는 평화적 해결의 길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이 문제는 결국 우리 한국정부가, 그리고 한국 국민이 주장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야당과 일부 언론의 정략적 공세가 4년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북한 핵실험 이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안보불감증’ ‘저자세 대응’ ‘친북좌파정권’ 심지어 ‘핵무기 개발을 지원한 정권’이라며 많은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즉각적인 중단은 물론이고 ‘국지전도 감수해야 한다’ ‘우리도 핵무기 개발을 검토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국민의 성숙한 태도였습니다. 미사일 발사와 북한 핵실험 와중에서도 국민들은 전혀 흔들림 없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해 주셨습니다. 북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일어났던 사재기, 달러 바꾸기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리 국민은 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포용정책의 승리
북한의 태도도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까다로운 상대이기는 하지만 조금씩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화해 가고 있습니다. 얘기하기가 조금 쉬워졌습니다. 남북 간의 신뢰도 이전보다는 확실하게 높아진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의심부터 먼저 하고 보던 사이였는데, 이제 말을 조금 곧이곧대로, 그대로 듣는 경향이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남북 간 교류협력도 크게 증진되었습니다. 연간 왕래인원이 1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올해 교역량은 17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지금 개성공단에서는 1만5천여명의 북한 근로자가 우리 기업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7만명 규모로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의 군사요충지였던 그 자리가 한민족 경제협력의 중심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가 휴전선을 통과했습니다.
이 모두가 안팎의 대북 강경기조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이라는 대결과 긴장의 와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최대한의 관용과 인내로써 북한과 대화하고 신뢰를 쌓아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는 앞으로도 이러한 대북 화해협력의 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갈 것입니다.
끊임없이 상대를 경계하고 적대해서 대결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주장을 포용하고 역지사지하는 태도를 가짐으로서 신뢰를 쌓아왔습니다. 상대가 불합리하게 나올 때는 역시 인내심을 갖고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하는 대로 우리도 똑같이 대응해야 한다는 ‘상호주의’로는 이처럼 어려운 대화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상호주의는 당장은 속 시원할지 몰라도 국민의 안전과 평화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뢰를 해치고 또 다른 대립과 갈등을 불러올 뿐입니다. 상호주의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수시로 발생하는 위기의 반복과 대결구도밖에 없을 것입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때 일부 언론이 주장한 대로 강경한 대응을 했더라면, 그리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중단했다면 지금 과연 어떻게 되어 있겠습니까?
반세기 동안 녹슬었던 경의선 열차가 남북을 오고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개성공단에 참여했던 우리 기업들도 막대한 손해를 입고 지금 낭패감에 빠져있을 것입니다. 외국 투자자들은 빠져 나가고, 잘나가던 주가가 곤두박질 쳤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북핵문제가 난마처럼 얽혀서 해결이 요원한 일로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대북 강경책을 쓰지 않았고, 비상을 걸어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도 않았지만 한반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안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대한민국의 ‘평화지수’가 미국, 프랑스보다 앞서고 있습니다.
그 동안 북핵문제의 해결 과정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상대를 포용하고 신뢰를 쌓아나간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나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남북관계 전략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북핵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전반에 걸친 문제
참여정부는 북핵문제를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전반에 걸친 문제로 다루어 왔습니다. 단순히 핵을 폐기하는 차원을 넘어 동북아의 평화와 안보문제를 보다 본질적으로 해결해 가는 계기로 삼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동북아의 평화세력으로서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해 가는 길이라는 점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 그 첫 걸음은 한반도에 평화구조를 진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반도 비핵화를 조속히 달성해야 합니다. 반세기를 넘겨온 정전체제도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할 것입니다. 또 북·미간, 북·일간 국교정상화를 촉진시켜 나가야 합니다.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동북아 지역경제협력과 지역안보협력 구축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은 동북아다자안보협력의 첫 관문
6자회담을 통한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외교적 타결 노력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다자안보 협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2005년 9·19공동성명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을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안보협력체제와 연동시키고 있었습니다. 또한 2007년 2·13합의에 의해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워킹그룹’이 가동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북핵문제의 해결 차원을 넘어 동북아의 평화안보체제를 마련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앞으로 6자회담은 6자 외무장관회담으로 발전될 것이며, 이와 별도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직접 관련 당사국들 간의 협상도 추진될 것입니다.
3-2. 미래전략
동북아시대의 비전은 핵심적 미래 전략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라는, 밝은 미래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자세를 가다듬고 국론을 모아 나갑시다. 이제 통일·안보 문제에 관한 한 흑백논리나 소모적인 논쟁으로 국력을 낭비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라는 비전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핵심적인 미래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이 웅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국가적인 전략입니다. 이 비전에 관해서는 정파적 이해가 다를 이유가 없습니다. 어느 정당도, 차기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 누구도 이 비전을 가벼이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앞 다투어 이 비전과 전략을 앞으로 국민 앞에 공약으로 제시할 것이라고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전략을 추진하는 기본적인 사고와 자세, 그리고 역량입니다. 불신과 대결을 앞세우는 냉전시대의 사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감정적 대응을 앞세우는 경박한 상호주의로는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없습니다. 인내와 절제, 관용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포용정책을 수용하고 그리고 실천해야 합니다.
세계 일류국가로 웅비하는 꿈
지금 당면한 우리의 과제는 북핵문제 해결이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닙니다.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고 남북이 함께 보다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나가야 합니다. 나아가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열어 나가야 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구상 속에서 북핵문제를 단순히 핵무기를 폐기하는 차원을 넘어 동북아 평화 전반에 걸친 문제로 다루어 왔습니다. 이미 우리는 9·19공동성명에 동북아시아의 다자안보체제를 위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담아 놓았습니다.
그 첫 걸음은 한반도에 평화구조를 정착시키는 것입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조속히 달성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나가야 합니다. 군사적 신뢰 구축과 함께 경제협력을 확대해서 남북공조를 통한 북방경제 시대를 열어나가야 합니다.
북방경제 시대가 열리면 베트남 특수, 중동 특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우리 경제의 크나큰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것입니다. 우리의 경제 무대가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뻗어나갈 것입니다. 무역과 금융, 비즈니스 등 모든 경제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입니다. 북한도 우수한 자질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협력해 나간다면 그야말로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한반도 시대를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동북아 경제의 주역으로 우뚝 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개성공단은 남북경협의 성공사례로서 우리 중소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소기업들이 좋은 기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동북아 금융·물류 비즈니스 허브 전략도 착실하게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역량과 역동성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계 속의 한국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조금 과장한다면, 단군 이래 최고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남북이 함께하는 한반도 경제, 동북아시아 경제까지 성공시켜내면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일류국가로 웅비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청와대브리핑 www.presiden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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