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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학【美學】

<한옥미학 30> 엉성함의 미학

by 禱憲 201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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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함의 미학

엉성해 보이는 한옥

한옥은 엉성해 보인다. 요즘 기준으로 하면 짓다 만 것 같기도 하며 잘 봐줘야 애는 썼지만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해 보인다.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대충대충 한 것 같다. 한옥의 재래다움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일단 재료부터 잘 다듬지를 않는다. 너무 흉해 보이지만 않고 안전성에 결정적인 문제만 없으면 인공적 손질을 최소화한다. 좋은 말로 하면 자연재료를 그대로 쓴 것이다. 재료의 자연적 성질을 그대로 살렸다고 바꿔 말할 수도 있다. 오래된 한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면이며 한옥만의 특징적 장면이기도 하다.

 

이런 장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주로 부정적 인상이 주를 이루었다. 아마 모든 부재의 정합이 딱 들어맞고 디테일도 잔털 하나 없이 깔끔하게 다듬어내는 산업화된 건축방식에 길들여져서 그럴 것이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한옥은 분명히 엉성하기 짝이 없는 집이다. 미장이나 목수 같은 전문 일꾼들에게서 한옥에서 보이는 이런 습성이 남아 있다면 일을 잘 못하는 것이 된다. 근대화라는 것에는 한옥의 이런 습성을 떨쳐버리고 정말로 물샐틈없이 정밀하게 시공해내는 일도 들어간다. 우리는 이런 것이 기술이고 실력인 시대에 살고 있다.

 

 

김동수 고택 자연재료는 가급적 다듬지 않고 제 생긴 대로 놔두면 자기들끼리 어울려 볼 만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집은 방음도 잘 되고 문짝도 덜렁거리지 않게 되었으며 벽과 천장이 만나는 모서리는 날카롭게 직각을 잘 유지한다. 그런데 집이 이렇게 산업화되어 갈수록 왜 정신적 안정감을 측정하는 각종 수치는 계속 나빠지기만 하고 듣도 보도 못하던 중독 증세는 늘기만 할까. 사회학 용어로 하면 소외감(alienation)이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와 산업화의 혜택을 적당히 누리면서 이전보다는 더 살 만해졌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은 반대로 본다. 나이 든 어른들 얘기를 들어봐도 전문적 분석이 맞는 것 같다.

산업화가 사람의 본질과 안 맞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길어야 200여 년, 사람들의 일상생활까지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은 잘해야 100여 년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직 산업화에 적응을 덜 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몇 백 년이 더 지나서 사람의 뇌와 신경 구조가 완전히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2010년 한국사회를 기준으로 하면 산업화된 조형 환경은 우리의 본성하고 너무 큰 거리를 갖는다. 어느 점에서 그럴까. 한옥의 엉성함을 거꾸로 생각하면 된다.

 

 

건축 재료도 하나의 객체로 보아서 그 고유 형상을 존중했다

한옥의 엉성함의 미학은 우선 재료에서 드러난다.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재료를 가급적 가공하지 않고 본래 상태대로 사용한다. 물론 나무야 1년 이상 잘 말려야 하지만 형상을 다듬는 데에는 신중하다. 기둥은 집의 전체 인상을 결정하니 곧은 것이 좋은데 이 경우에도 휜 놈을 다듬기보다는 처음부토 곧은 놈을 골라 썼다. 반면 대청 천장에 들어가는 대들보나 2차 보, 그리고 서까래 등에는 휜 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썼다. 한때는 이런 휜 부재들을 두고 말도 많았지만 어느새 우리 기억에도 한옥의 전형적 장면 가운데 하나가 대청 천장에 드러난 여러 목재들이 자연스럽게 휜 모습이라는 점이 자리 잡았다. 이런 부재들이 일직선으로 다듬어져 있으면 마치 된장찌개에 된장의 구수한 맛이 빠진 것처럼 진짜 한옥 같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노락당 돌과 나무와 잡 철물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공예미는 한옥에서 빠질 수 없는 백미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재료 수급 차원에서 보면 한반도에는 휜 나무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이런 자연환경을 고려해서 집의 모든 부재에 곧은 나무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휜 나무를 사용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의 비율에 맞춰 부재를 사용한 것이다. 굳이 일직선으로 다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산업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의견도 있으나 객체를 존중하는 철학이 바탕에 깔린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집에 들어가는 건축 재료도 하나의 객체로서 주체인 나와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았다. 나무나 돌 같은 건축 재료가 예뻐서 그랬을 리는 없다. 이보다는 집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투영시키고 대응시키기에 좋은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철학을 집에도 적용시킴으로써 그런 철학을 훈련하고 항시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는 장으로 활용했다는 뜻이다. 건축 재료를 생명체가 없는 단순한 물질로 보지 않았다. 그 가치와 존재를 존중해야 할 객체로 보았다.

 

 

이승업 가옥 한국 전통건축에서 자연재료를 대하는 기술의 태도는 재료 스스로 알아서 만들어 가는 자연스러움에 가급적 가깝게 이끄는 가이드 개념에 가깝다.

 

 

객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그 다음은 나와 너, 즉 주체와 객체 사이의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우리의 민족정서에는 주체와 객체를 동등하게 보는 사상이 발달해 있다. 나를 주체로서 세상의 중심에 두고 나의 주변 객체를 나에 맞춰 재편하라고 가르친 데카르트식의 서양 사상과 다른 점이다. 서양에서는 나의 능력으로 주변을 제압해서 나에게 맞추게 만드는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지만 우리의 민족정서는 많이 달랐다. 물론 우리도 집권층에서는 목숨을 건 치열한 주체 싸움이 있었지만 이는 지배 권력을 향한 욕망이 개입된 일그러진 모습일 뿐, 적어도 일상생활 속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에서는 분명 객체를 존중해서 같이 맞추고 타협하는 성향이 강했다. 이는 한국 문화, 좁게는 한옥 전체에 드러나는 개별성 중시 경향에서 잘 알 수 있다.

 

 

‘기술’이 예술’의 경지에 오른 상태야말로 진정한 기교’


객체에 대한 태도를 기술의 개념에 적용시키면 한국 특유의 공예미학이 탄생한다. 우리의 전통 장인은 기술을 인간의 솜씨나 재주를 뽐내는 경연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각 재료의 고유한 성질이 잘 발현되도록 도와주는 통로로 생각했다. 재료를 다듬어 인간에게 필요한 공구를 만드는 일 역시 보기 좋게 매끄럽게 잘 다듬어 내서 ‘내 솜씨 봐라’ 하며 ‘짠’ 하고 세상에 내보이는 기회로 여기지 않았다. 그보다는 만약 재료 스스로 사람의 손길 없이 자기 혼자서 공구를 만들게 되었다면 그렇게 되었을법한 상태에 가급적 가깝게 놔두려 했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 장인이 생각했던 기술의 의미이다. 각 재료의 고유한 성질을 파악해내고 이것이 잘 발현되어서 공구로 만들어지도록 이끌어주는 능력을 기술의 요체로 본 것이다, 공구 속에 원래 재료의 자연적 성질과 장점이 가급적 많이 남아 있도록 보존해내는 능력을 기술로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자연재료의 개성을 잡아낼 줄 알아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손재주가 튀어나와 이것을 갈아 없애지 않도록 참는 인내심이 절실했다. 이런 큰 인내심까지도 능력으로 보았고 기술로 보았다. 그래서 기술을 재주나 솜씨나 산업으로 보지 않고 예술로 보아 ‘기예’라 불렀으며 이런 경계에 오른 상태를 진정한 기교로 보았다. ‘기, 예, 교’이다.

 

모든 재료는 각자의 몫이 있는 법이다. 곧은 나무는 잘려 나가고 휜 나무가 남아서 산을 지킨다지만, 휜 나무조차도 건축부재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활용했다. 이는 매우 과학적이기도 해서 건축부재의 내력 기능은 재료 자체의 강도와 단면적에 좌우되지 형상과는 큰 상관이 없다. 목질만 단단하고 단면적만 충분히 확보되면 건축부재로서 역학 기능을 수행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남는 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뿐이다.


 

윤증고택 재래다움에는 손맛이 빠질 수 없다. 투박할 수는 있어도 
최소한 소박하다. 기계 공예에서 느낄 수 없는 수공예의 손맛이다.

 

휜 나무기둥은 구조적으로 불안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사실 알고 보면 곧은 형상을 선호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일 수 있다. 괜히 우리의 호불호에 따라 대상을 편견하고 처음부터 좋은 놈, 나쁜 놈을 가리지 말자는 것이다. 보기 좋고 예쁜 것을 좋은 것으로 단정 짓는 것은 우리의 시각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상에 대해 공정치 못한 핍박을 가하는 것일 뿐이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동서양을 막론한 건축역사와 이론을 주 전공으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문명비평도 함께 한다. 현재까지 37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공부로 익힌 건축이론을 설계에 응용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jyimis@empas.com
[출처]네이버캐스트 :: 오늘의 집 > 한옥미학   2010.07.22.   http://navercast.naver.com/home/koreanstyle/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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